바삭하게 구워 먹기 좋게 자른 삼겹살에 깻잎, 상추, 쌈장이 한 접시에 담겼다. 사이드 메뉴로는 고르곤졸라 치즈를 얹은 사각피자가 나왔다. 후식은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 주문한 지 10분 만에 모든 메뉴가 제공됐다. 이곳은 식당이 아니라 대구의 한 PC방이다. 메뉴는 70여 가지. 음료 메뉴를 합치면 100종이 넘는다.
전국 1만8000여 개 PC방은 요즘 ‘PC토랑’으로 불린다. 먹거리 매출이 평균 40%를 넘고, 60%에 육박하는 곳도 많다. 음식 맛이 좋은 PC방을 골라 작성한 ‘피슐랭가이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명하다. 서울 신림동 치킨치즈버거, 역삼동 김치볶음밥, 대구 연어회 등. 맛집 메뉴가 아니라 PC방에서 소문난 음식들이다.
이 시장이 커지면서 식품업계도 들썩이고 있다. 단체급식, 식자재 유통회사인 CJ프레시웨이와 삼성웰스토리는 물론 하림의 육가공 계열사 팜스코, 밀키트 1위 업체 프레시지까지 PC방업계를 위한 식자재 공급 및 메뉴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PC방이 다시 살아난 건 2016년부터다. 생존을 위해 대형화,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됐다.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로스트아크’ 등 대박난 게임도 속속 등장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가맹점 수익을 높일 방안으로 먹거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고급 사양 게임기기를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기기를 유지·보수해야 하는 기존 PC방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었다. 전국 600여 개 점포를 거느린 국내 1위 PC방 프랜차이즈 아이센스리그PC방은 2017년부터 ‘쉐프앤클릭’이라는 이름으로, 샹떼PC방은 ‘스쿡(SCOOK)’이라는 이름으로 음식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라이또PC방의 ‘뉴잇또랑’, 피에스타PC방의 ‘피방쿡방’, 세컨드찬스의 ‘XOXO’ 등이 그 뒤 나온 PC방 운영 식음료 전문 브랜드다.
그 중심에 음식업이 자리잡고 있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컵라면과 과자, 음료수가 먹거리의 전부이던 PC방이 요즘은 ‘숍인숍’ 개념으로 먹거리 매출이 50%까지 올라온 곳이 많다”며 “부가 수익원이 주 수익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조리 식자재와 밀키트를 취급하는 기업들은 이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단체급식 1위 삼성웰스토리와 밀키트 1위 업체 프레시지는 이달 협약을 맺고 조리가 간편한 밀키트를 공동 개발해 PC방 등에 납품하기로 했다. 세컨드찬스 PC방은 팔도와 협업해 자체상표(PB) 라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CJ프레시웨이는 PC방에 만두와 냉동볶음밥, 양파와 소스류 등을 납품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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