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개헌론에 다시 불을 붙였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란히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서면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토지 공개념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병석 “현행 헌법 시대정신 못 담아”
박 의장은 17일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사에서 “한 세대가 지난 현행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 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내년’을 개헌 시한으로 제시했다. 박 의장이 내년으로 못박은 이유는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 전에 개헌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내년 4월 예정된 보궐선거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같이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여야 모두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된 현행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여야가 모두 참여한 헌법개정특위가 가동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권력구조와 개헌 시기 등 각론에서 여야가 대립하면서 개헌 작업은 중단됐다. 국회 주도의 개헌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직접 개헌안을 발의했다. 문 대통령 개헌안은 대통령을 두 번 연속 할 수 있는 대통령 4년 연임제가 핵심이었다. 책임총리제를 강화했지만 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국가정보원장 등 4대 권력기관장의 대통령 임면권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애초 개헌 취지와 달리 대통령 권한을 ‘찔끔’ 축소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발의 후 60일이 지난 2018년 5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부쳐졌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김두관 “토지는 공공재”
민주당에서는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토지 공개념, 동일노동·동일임금 등 자유시장 경제에 반하는 개념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이날 SNS에 “우리도 독일처럼 새 헌법에 토지가 명확하게 공공재라는 점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토지 공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용선 의원도 앞서 “토지 공개념을 빨리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8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문 대통령에게 토지 공개념뿐 아니라 공무원 노동 3권 보장,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등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내용의 개헌 자문안을 제출했다.野 “개헌 동참여부는 내용 보고”
미래통합당은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여권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시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지금부터 개헌을 준비해서 내년 4월까지 개헌을 완성할지 상당히 회의적”이라며 “개헌 논의 동참 여부는 어떤 내용을 가지고 개헌하느냐를 봐야 한다”고 했다.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태 등으로 곤경에 빠진 민주당이 개헌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개헌안을 발의(과반)할 수는 있지만 처리(재적의원 3분의 2)를 위해서는 통합당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헌에 대한 찬성 여론은 높은 편이다. 서청원 전 의원이 여의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 10~11일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2.52%포인트)한 결과 응답자의 59%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4%였다.
권력구조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택한 비율이 50%로 나타났다. 현행 5년 단임제 유지는 25%였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30%가 ‘21대 개원 직후’가 적당하다고 했다. 27%는 ‘2022년 대선 이후’, 18%는 ‘2021년 중’이라고 답했다. 개헌에 꼭 포함돼야 할 내용으로는 강화된 국민 기본권 명시(34%),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32%), 통일과 통일정책의 구체적인 명시(13%), 토지 공개념과 이익공유제의 명시(12%) 등 순이었다.
조미현/고은이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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