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9월말 임기를 1년여 남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내각이 연이은 헛발질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추진한 현금지급 대책부터 시작해 육상 배치형 요격 미사일 시스템 이지스어쇼어, 9월 입학제에 이어 소비진작을 위해 밀어붙였던 국내여행 장려대책 '고투(Go To) 트래블 캠페인'까지 의욕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하나같이 좌초되고 있다.
야당과 지방자치단체, 의사회 등은 진작부터 고투캠페인의 시행시기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도 코로나19의 2차 유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소비진작에 맘이 급했던 일본 정부는 일정을 앞당겨가며 시행을 서둘렀지만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자 두손을 들고 말았다. 이날 도쿄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286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등 전국적으로 622명의 감염자가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코로나19는 도쿄의 문제(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코로나19는 국가의 문제(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등의 발언을 주고 받으며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만 노출하고 말았다.
아베 내각이 여론과 상황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다 좌초하거나 시기를 놓치는 정책은 이 뿐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소득이 급감한 세대에 한정해 30만엔씩을 지급하기로 했다가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반대로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엔을 지급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재무성이 이미 예산안을 다 짜둔 시점이었다. 결국 예산안을 수정하느라 코로나19 긴급경제대책마저 늦어지고 말았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태세를 마련한다며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밀어붙였던 이지스어쇼어 역시 지난달 중순 돌연 중단을 선언했다. 해당 지자체인 아키타현과 야마구치현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내린 결정이어서 반발을 샀다. 5월14일 아베 총리가 직접 "유력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까지 했던 각급 학교의 9월 입학제도 보류했다. 휴학 장기화에 따른 교육격차 및 학사일정 지체를 해소하고 이 기회에 일본 교육의 국제화를 달성하겠다며 야심차게 꺼낸 대책이었다.
260억엔(약 29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유일하게 끝까지 밀어붙인 '아베노마스크(1가구당 면마스크 2장씩 배포하는 정책)'는 복지시설마저도 거부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대 치적인 아베노믹스(대규모 경제부양정책)의 성과가 코로나19로 무너지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경제대책과 전염병 수습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정권 구심력을 회복하기 위해 아베 총리는 올 가을 국회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 5일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야당의 분열과 낮은 지지율을 확인한 자민당 내부에서는 "아무리 지지율이 낮아도 과반의석은 무난하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하지만 14일 전통적인 텃밭 가고시마현 지사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 패배하면서 총선결과도 낙관하기 힘든 분위기다.
도쿄 외교계 관계자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노출된 민주당 정권의 무능함을 계기로 집권한 아베 2차 내각도 10여년 만의 대재난 앞에서 별다를 게 없다는 반응이 일본 각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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