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어필드 정복…세계 1위 오른 욘 람 "스페인 골프史에 내 이름이 적히다니…"

입력 2020-07-20 17:39   수정 2020-10-18 02:14

욘 람(26·스페인·사진)이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GC(파72) 18번홀(파4)에서 1.5m 거리의 파 퍼트를 밀어 넣은 뒤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린 옆에는 황금색 넥타이를 맨 ‘호스트’ 잭 니클라우스가 44년간 치러졌던 미국프로골프(PGA)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처음 탄생한 스페인 출신 챔피언을 맞이했다.
“코로나로 돌아가신 할머니께 영광을”
람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스페인 선수 최초로 대회 트로피를 들어 기쁘다”며 “최근 코로나19로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스페인 국민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람은 20일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3오버파 75타를 쳤다.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를 기록한 람은 지난 시즌 팀플레이로 펼쳤던 취리히클래식에서 짝을 이룬 라이먼 파머(최종합계 6언더파 282타)의 추격을 3타 차 2위로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통산 4승째를 신고한 람은 우승 상금 167만4000달러(약 20억1470만원)도 챙겼다.

람은 더 큰 선물을 받았다. 시즌 다섯 번째 ‘톱10’에 오르며 프로 데뷔 4년27일 만에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한 것. 람은 “골프를 치면서 바랬던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해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람은 이날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4타 차 단독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간 람은 전반에 2타를 줄이며 2위권 선수들을 멀찍이 따돌렸다. 하지만 후반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10번홀(파4)과 11번홀(파5)에서 보기와 더블보기를 적어내며 3타를 까먹었고, 14번홀(파4)에서 다시 보기를 범했다. 그러면서 2위 파머에게 3타 차로 쫓겼다.

하지만 람은 16번홀(파3)에서 그린 러프에서 그림 같은 웨지샷 버디를 뽑아내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이 버디는 경기 직후 어드레스 때 공이 움직인 게 확인되면서 2벌타를 받았지만 17번홀(파4), 18번홀(파4)에서 타수를 지키는 기세를 이미 만들어 준 뒤였다.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 세계랭킹 1위
람은 이번 우승으로 ‘포스트 타이거 우즈’ 시대를 이끌어갈 후계 그룹 중 가장 먼저 맹주 자리를 차지했다. 짧은 백스윙으로 샷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큰 장점이다. 그린 주변 쇼트게임이나 퍼트 역시 흠잡을 데가 없다는 평가다. 만 25세8개월9일의 람은 역대 선수 가운데 다섯 번째로 어린 나이에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스페인 출신으로는 1989년 세베 바예스테로스에 이어 31년 만의 1위 등극이다. 다만 그는 경기 중 스윙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클럽을 내던지는 등 다혈질적인 행동을 자주 내보여 ‘악동’ 이미지를 달고 다닌다는 게 흠이다.

뮤어필드 빌리지는 이날도 선수들을 괴롭혔다. 오후부터 비와 번개가 쳤고, 딱딱한 그린과 최대 시속 48㎞에 달하는 바람은 선수들의 공을 의도치 않은 곳에 가져다 놨다. 최종 라운드 평균 타수는 2018년 US오픈(76.47타) 이후 가장 높은 75.95타. 세계 정상급 선수들도 기준타수보다 4타 가까이 더 친 셈이다.

우즈는 최종라운드에서 4오버파 76타를 치며 공동 40위(6오버파 294타)로 대회를 마쳤다. 우즈는 “4라운드를 다 치렀고, 샷 감각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즈는 다음 대회 출전 계획을 묻자 “곧 보자”며 확답을 피해 여운을 남겼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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