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결 국제부 기자) 세계 7대 ‘오일메이저’ 중 하나인 셰브런이 최근 부채에 시달려온 미국 텍사스 기반 석유·가스기업 노블에너지를 인수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에너지업계가 휘청이는 와중에 처음으로 나온 대규모 인수합병(M&A) 계약입니다.
셰브런은 이를 통해 미국 페름분지 시추권을 비롯해 서아프리카 일대와 지중해 대형 천연가스전 사업을 싼 값에 확보하게 됐습니다. 이를 두고 작년에 아나다코 인수를 옥시덴탈에 뺏긴게 오히려 득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왜인지 알아봤습니다.
◆싼값에 에너지 자산 대거 모은 셰브런
셰브런은 20일(현지시간) 노블에너지를 50억달러(약 6조원)에 인수합병(M&A)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블에너지의 부채를 포함하면 인수 규모는 130억달러(약 15조5680억원)에 이릅니다.
이번 M&A는 전액 주식교환 방식으로 이뤄지는데요. 셰브런은 노블에너지를 주당 10.38달러에 인수합니다. 최근 10일 평균 주가 기준으로는 12% 프리미엄을 붙였는데요.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도 작년 7월22일 주가(20.89달러)의 절반 수준에 그칩니다. 코로나19 이후 노블에너지 주가가 크게 내렸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대형 가스전 확보…이스라엘 첫 진출
셰브런은 이번 거래로 얻게 된게 많습니다. 일단 노블에너지가 보유한 콜로라도 덴버분지와 텍사스 페름분지 등에서 시추권을 추가 확보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셰브런은 이미 페름분지 등에서 보유한 설비가 많고, 대형 파이프라인 네트워크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노블에너지의 시추권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서아프리카 일대 가스전도 얻게 됐습니다.
지중해 동부에 있는 이스라엘의 레비아단 천연가스전 사업도 셰브런 품에 돌아갔습니다. 레비아단 가스전은 이스라엘이 최근 주요 에너지사업으로 보고 있는 사업지입니다. 이스라엘은 레비아단 가스전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일부 자국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이집트에 수출하거나 중동 및 유럽 시장에 팔 계획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셰브런이 각국 수출용 천연가스 채굴 경쟁이 치열한 지중해 동부까지 발을 넓히게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 거래로 셰브런은 이스라엘 사업에 진출한 첫번째 오일메이저 기업이 됐습니다. 주로 중동 산유국과 협업하는 오일메이저 기업이 이스라엘과 손잡게 된건데요. 마이클 워스 셰브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스라엘과 일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 셰브런이 기존에 사업을 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 정치적 차이와 긴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셰브런은 어떤 정파와도 관련이 없는 민간기업으로, 역내 모든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습니다.
◆업계 경영난 틈타 “싼 값에 좋은 자산 확보”
최근 미국 독립 에너지업체 중엔 경영난에 시달리는 곳이 늘었습니다. 올들어 휘팅페트롤리엄과 체서피크에너지 등 20여곳이 파산했습니다. 코로나19로 에너지 수요가 크게 줄면서 원유·가스 가격이 확 내리자 폭락세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노블에너지도 배럴당 40달러 안팎의 유가로 수익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최근 텍사스에서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커지면서 경영난이 가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셰브런도 최근 현금 확보를 위해 배당을 줄이고 직원 일부를 해고했는데요. 그런 와중에 M&A에 나선 것은 이번 거래가 ‘저비용 고효율’ 전략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워스 셰브런 CEO는 “이번 거래를 비용효과적인 기회로 봤다”고 말했습니다.
셰브런 CEO는 “셰브런의 재무 상황은 안정적인 편이라 어려운 시기에 양질의 자산을 매입하기로 했다”며 “노블에너지가 보유한 유전 등은 운영비가 저렴하고 당장 단기 투자가 필요하지 않아 셰브런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설명했습니다.
◆아나다코 인수전, 뒤바뀐 승자와 패자
주요 외신들은 작년 셰브런이 옥시덴탈페트롤리엄(옥시덴탈)과의 아나다코 인수전에서 패한게 오히려 호재가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셰브런은 작년 아나다코에 330억달러 인수금액을 제시하고 인수 우선협상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협상 도중 옥시덴탈이 조건을 확 높여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셰브런은 우위를 잃었습니다. 당시 옥시덴탈은 셰브런이 제안한 금액보다 50억달러 많은 380억달러를 제시했습니다. 셰브런은 인수가의 25%를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옥시덴털은 그보다 훨씬 높은 조건인 현금 78%를 제안했죠.
옥시덴탈은 치열한 공세 끝에 아나다코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요. 코로나19로 에너지 수요가 꺾이자 자산 가치가 확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인수 과정에서 끌어다 쓴 부채 때문에 재무구조도 크게 나빠졌습니다.
반면 셰브런은 아나다코로부터 10억 달러의 인수협상 해지 위약금을 챙겼습니다. 무리한 인수를 벌이지 않은 덕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재무구조도 지켰죠. 덕분에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었다는게 WSJ의 분석입니다.
◆에너지업계 재편 계속…"강한 기업 더 강해질 것"
당분간 에너지업계에선 '강한 기업이 더 강해지는' 업계 재편이 계속될 전망입니다. 두안 딕슨 딜로이트 부회장은 “이번 유가 침체로 인해 거대 에너지기업들이 경영난에 처한 작은 기업들을 인수해 덩치를 키울 것”이라며 “부도와 인수합병이 이어지면서 강한 기업이 더 강해지는 등 업계 재편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라고 NYT에 말했습니다.
FT도 “재무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셰브런이나 엑손모빌 등 오일메이저 기업들이 소규모 업체 M&A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작년에 크게 무리하지 않고 투자 기회를 놓친게 올해 더욱 큰 기회로 돌아왔다니,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always@hankyung.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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