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위기에 빠진 회원국들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7500억유로(약 103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대규모 기금을 마련해 회원국 지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U 회원국들이 ‘경제통합’을 위해 한걸음 다가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수혜국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가 지목된다. 이탈리아는 EU로부터 820억유로의 보조금과 1270억유로 규모의 대출금을 지원받을 예정이다.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들과 폴란드 등도 수백억유로의 지원을 받게 돼 경기 회복의 원동력이 될 전망이다.
다만 부양기금 지원을 받은 국가들의 지출은 면밀한 계획 아래 통제되고 환경 및 경제 개혁을 포함해 EU의 우선순위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법치주의를 준수해야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우파 포퓰리즘 정부가 집권한 폴란드와 헝가리 등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유럽이 행동하는 힘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유럽이 코로나19를 극복해 나가는 여정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답보 상태에 있던 협상에 물꼬를 튼 것은 미셸 의장이었다. 그는 보조금 3900억유로, 대출 3600억유로로 구성된 합의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EU 재정기여금을 일부 돌려받는 ‘리베이트 조항’이 협상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부채비율이 낮은 검소한 나라 4개국 등 반발이 큰 국가의 리베이트 규모를 더 높여주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는 기존 대비 최대 두 배의 환급금을 돌려받는 것으로 관측된다.
EU 경제회복기금을 주도한 것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이들은 지난 5월 공동성명을 통해 EU에 처음 기금 마련을 제안했다.
메르켈 총리는 “EU가 마주한 최대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며 “EU가 통합국가로 가는 큰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역사적인 날”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EU는 내년부터 2027년까지 1조740억유로(약 1조2000억달러) 규모의 예산을 책정하기로 합의했다. 이 예산은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농업보조금, 이민 등 EU의 다양한 정책 운용에 쓰일 예정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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