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집값 잡기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번졌습니다. 이지스자산운용 사모펀드의 서울 강남 나홀로 아파트 ‘통매입’을 두고 며칠새 논란이 이어지더니 결국 매각이 결정됐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투기’와 ‘규제 회피’로 규정한 이후 각 부처가 앞다퉈 조사에 나선 영향일까요.
▶7월16일자 ‘강남 아파트 한 단지가 통째로 팔린 사연은? [집코노미]’ 참조
이 소식을 처음 전해드리면서 언급한 것처럼 당초 이지스자산운용은 420억원을 들여 삼성동 ‘삼성월드타워’를 매입한 뒤 리모델링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총 사업비 800억원을 들여 내년 착공을 목표로 하는 개발사업이죠. 부동산 디벨로퍼들이 낡은 건물 등을 사들여 고급 빌라로 환골탈태시키는 것과 본질은 같습니다. 사모펀드가 시행을 할 뿐이죠.
매도인의 정보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밝히지 않았었습니다만 경쟁적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사실상 한 사람의 소유인 단지입니다. 1997년 준공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거래된 적도 없었죠. 그래서 단지 전체가 한 번에 거래될 수 있었고, 딱히 시세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추 장관의 언급처럼 개인이 펀드 뒤에 숨어 주택 명의를 분산하고 세금을 아끼려고 했을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따져볼까요.
거래 직전 나온 ‘6·17 대책’과 이후 발표된 ‘7·10 대책’을 보면 이 같은 방법은 전혀 실익이 없습니다. 법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는 6% 단일세율로 오르고 6억 공제액과 세부담상한선까지 없어질 예정입니다. 개인 다주택자보다 세금 부담이 수배 높습니다. 개인이 자신 명의 주택을 펀드로 돌린 뒤 숨는 것이라면 조세 회피가 아니라 세금을 더 내겠다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오히려 모범납세로 상을 받아야 합니다.
리츠(REITs)나 부동산펀드에 주어지는 재산세 분리과세 등 혜택도 공모 형태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펀드는 사모 형태죠. 아파트가 아닌 토지담보대출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만 재개발·재건축도 조합원들의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죠. 형식상으론 문제될 게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당국도 이런 여건을 모르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사모펀드가 주택을 거래했다는 상징적 사건에 대한 괘씸함을 느낄 뿐이겠죠. 이지스자산운용은 증축이 불가능한 이 단지의 가구수 확대를 위해 고민했습니다. 도심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도울 일이었죠.
사모펀드가 주택을 사는 건 이례적인 일이긴 합니다. 그런 만큼 자산운용업계는 이지스자산운용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업계에선 ‘이지스 대 비(非) 이지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운용역도 많고 혁신적인 투자도 많이 하는 곳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앞으로 이런 형태의 개발 사례가 더 나오긴 쉽지 않습니다. 애초 소유주가 한 사람이 아닌 이상 거래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죠.
자산운용업계는 이번 일을 두고 ‘투기’나 ‘범죄’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굉장히 우려스럽게 보고 있기도 합니다. 한쪽에선 리츠 등 부동산 간접투자 활성화를 유도하면서 한쪽에선 본보기 처벌을 벼르는 모양새였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자본시장의 몰이해가 자산운용업계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정부 눈치보기 시절로 역행하게 하는 또 하나의 본보기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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