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어 강사가 키운 기업…9년 만에 시총 240조 '껑충' [조아라의 소프트 차이나]

입력 2020-07-25 07:30   수정 2021-04-09 10:59


수학 점수 '1점'.

1982년 첫 가오카오(중국 수능)을 치른 한 소년의 손에는 초라한 성적표가 들려있었습니다. 야심만큼은 누구보다도 컸던 이 소년은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베이징대에 지원해 보기 좋게 낙방했습니다. 이듬해 다시 치른 시험에서 수학 점수는 고작 19점. 이후 세번째로 본 시험에서 79점을 받고 1984년 정원 미달로 간신히 항저우사범대 외국어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영어 강사로 활동할 만큼 언어에 특기가 있던 그는 미국 출장길에 오르면서 일생일대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우연히 인터넷에 'beer(맥주)'를 검색했는데, 미국·독일 맥주만 소개될 뿐 어디에도 중국 맥주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인터넷에 호기심이 생겼고 1995년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 '차이나옐로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인터넷'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1999년 다시 설립한 기업이 바로 '알리바바'입니다. 1점짜리 수학 낙제생이었던 그의 이름은 바로 마윈. 그는 고작 우리 돈 8000만원으로 미국 아마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를 만들었습니다. 단 6분 만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2000만달러(약 240억원)를 투자받은 일화는 업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윈은 2004년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ALIPAY)'를 도입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아 거래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힘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3자 보증 결제 방식'을 택한 것인데요. 구매자가 알리페이에 현금을 입금하면, 상품 수령 후 결제금액이 판매자에 넘어가는 구조로 물품 대금을 못받거나 오배송 사고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낮은 신용카드 사용률을 극복할 방안으로 모바일 결제를 고안해낸 것입니다.

그 결과 알리바바는 14억명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됐습니다. 알리페이는 온라인 결제를 포함해 교통 요금, 식당, 마트, 개인 간 송금 등 오프라인 영역 결제까지 광범위한 결제 서비스를 지원하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알리페이에 'QR코드'(2차원 형태의 바코드)를 삽입해 중국이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하는데 일조했습니다. 판매자들이 계산대 앞에 QR코드만 부착해 놓으면 카드 단말기 없이도 휴대폰 '스캔'으로 결제가 가능해 인기를 끌었는데요. 길거리 노점상, 공공 자전거 대여, 음료 자판기, 심지어 노숙인들까지 '스캔'을 구걸하는 모습이 화제가 될 만큼 중국인이라면 거의 대부분 갖고 있는 결제 시스템으로 상용화됐습니다.


2011년 마윈은 알리페이를 분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국이 단 1%의 해외자본만 보유하고 있어도 국무원으로부터 '비금융기관 지급서비스' 비준을 받게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외국자본을 보유한 기업의 페이 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소프트뱅크와 야후를 1, 2대 주주로 두고 있던 알리바바는 결국 알리페이를 비롯한 금융 서비스를 '앤트그룹(구 앤트파이낸셜)'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분사를 단행하게 됩니다.

이같은 결정을 내린 마윈은 다소 난감한 처지에 몰렸는데요. 당시 결정에 대해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은 "회사 경영자로서 덩샤오핑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이 대주주와 사전에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했던 것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앤트그룹'으로 분리한 결정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단순 결제 기능을 넘어 자산운용, 소액신용대출, 은행, 보험 등의 상품을 내놓으면서 최근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테크핀(techfin)'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테크핀은 마윈이 고안한 개념으로 정보기술(IT) 기업이 주도하는 금융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금융사가 IT 기술을 활용해 제공하는 핀테크와는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최근 네이버파이낸셜을 설립하고 금융업에 뛰어들고,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증권 등 금융 계열사를 두고 금융업에 진입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마윈은 알리페이를 결제하고 남은 예치금에 대해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머니마켓펀드(MMF) 서비스 '위어바오(余額寶)'를 2013년 내놓았습니다. 은행업을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그는 "은행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내가 바꾸겠다"라고 말하며 본격적으로 중소상공인들, 이른바 '개미'들을 위한 금융 상품을 잇따라 내놓아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펀드의 이용자 수는 지난해 6억명을 돌파했습니다. 현재 총자산은 1조1300억위안(약 190조원)으로 세계 최대의 MMF로 성장했습니다.

앤트그룹은 알리페이에 안면인식 결제서비스를 2017년 탑재했습니다. 2018년에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필리핀 전자지갑 업체 지캐시(GCash)간 실시간 국제 송금 서비스를 개시했습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하며 사업을 확대, 수입원을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알리페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 수는 10억명(지난해 1월 기준)에 달합니다. 알리페이를 보유 중인 앤트그룹은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와 홍콩거래소에 동시 상장을 추진 중입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앤트그룹의 기업가치를 약 2000억달러(약 240조원)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지난해 사상 최대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람코는 지분의 1.5%를 공모해 역대 최고 공모금액인 256억달러(약 30조6000억원)를 거둬들여 2014년 알리바바 IPO 기록(250억달러)을 제쳤습니다. 알리바바로부터 분사한지 9년. 금융 자회사 앤트그룹이 이 타이틀을 되찾아올지 관심이 갑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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