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주식의 거래정지가 길어지고 있다. 내달 초 한국거래소의 1차 판단이 나오는 가운데, 관건은 주요 후보물질인 '펙사벡'의 가치 입증이란 관측이다.
24일 거래소에 따르면 신라젠은 지난 5월4일 장 마감 이후 거래가 정지됐다. 전·현직 임원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장적격성(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됐다.
신라젠은 지난 10일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향후 매출 전망 등을 담은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했다. 신약개발 기업인 만큼 주요 후보물질인 펙사벡의 기술수출 가능성 및 가치에 대한 논의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심위는 다음달 7일 열릴 것으로 보인다.
기심위는 신라젠의 경영개선계획서를 토대로 거래재개, 개선기간 부여, 상장폐지 등 3가지 중 하나를 결정하고 코스닥시장위원회에 의견을 전달하게 된다.
기심위의 결정이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기심위의 의견을 전달받은 코스닥시장위원회가 다시 한번 이를 심의 및 의결한다. 코스닥시장위원회도 상폐 여부와 개선기간 부여 등을 결정한다. 시장위원회에서 상장폐지가 결정된다고 해도, 회사 측이 이의신청을 하면 한 차례 더 심의를 한다. 두번째 결과에 대해서는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 대신 소송으로 대응할 수 있다.
거래재개나 추가 개선기간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기심위가 펙사벡의 상업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펙사벡은 항암 바이러스다. 항암 바이러스는 정상세포에서는 작용하지 않고, 암세포에서만 증식해 암세포를 파괴한다. 암세포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사람의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정상적으로 인식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촉진하기도 한다. 면역체계를 교란시키는 암세포의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작용기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 항암제의 단점을 극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암세포 주변 환경을 바꿔 다른 항암제의 효능을 높여줄 것으로도 예상된다.
기대되는 효과들 때문에 항암 바이러스는 개발 초기 단계에도 거액에 기술수출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1건의 항암 바이러스 기술수출 중 6건이 동물실험(비임상) 단계에서 성사됐다. 나머지 5건은 1~2상 단계였다.
항암 바이러스를 다른 항암제와 함께 쓰려는 시도들도 나온다. BMS는 2016년 사이옥서스의 비임상 단계 항암 바이러스를 9억3900만달러(약 1조1200억원)에 인수했다. 사이옥서스의 에나데노툭시레브와 BMS의 면역관문억제제 옵디보의 병용요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BMS는 2017년에도 턴스톤으로부터 임상 1·2상 단계의 항암 바이러스를 사들였다.
신라젠의 펙사벡은 간암 임상 3상을 중단한 이후 다른 암종의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발표된 펙사벡과 면역관문억제제의 신장암 병용 임상 1b상 중간결과에서는 환자의 75%에서 암세포가 줄어드는 반응이 나타났다. 연내 국제학회를 통해 추가적인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중국 협력사 리스팜은 피부암인 흑색종에서 면역관문억제제와 펙사벡 병용 임상을 준비 중이다. 중국 의약품평가센터(CDE) 승인이 이뤄지면 내년 초부터 환자모집에 돌입할 예정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펙사벡의 핵심가치는 변함이 없으며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항암 바이러스가 면역관문억제제와 병용 시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민수/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