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Tech) 기업들이 악플·가짜뉴스·음모론을 주동하는 세력에 칼을 빼들었다. 과거 자신들은 '플랫폼'일뿐 '플레이어'가 돼서는 안된다며 이 같은 악성 콘텐츠를 '수수방관' 했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이용자들이 과거와는 달리 '플랫폼 책임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이 같은 악성 콘텐츠가 자신들의 사업을 아예 망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큐어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음모론을 매개로 집결한 극우세력이다. 이들은 미 정부 내 기득권 세력에 '딥 스테이트'란 이름을 붙이고, 이들이 민주당과 연결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온라인을 통해 무차별 확산시켰다.
이들의 '대표 작품(?)'은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부 장관의 '피자 게이트' 사건이다. 클린턴 전 장관이 워싱턴에 있는 피자가게 지하실에서 인신매매한 아동을 학대하고 악마숭배 의식까지 한다는 '음모론'을 SNS를 통해 퍼뜨렸다. 이 트윗을 본 한 남성이 클린턴의 '피자 게이트' 사건을 직접 조사하겠다며 해당 피자가게를 찾아가 총을 발사한 일도 벌어졌다.
트위터는 지난해 말 정치 광고가 민주주의를 해친다며 모든 정치 광고를 금지했다. 잭 도시 트위터 CEO는 당시 입장문에서 "우리의 정치적 메세지 전파는 그 가치로 이뤄져야지 돈으로 매수돼선 안 된다고 믿는다"며 배경을 밝혔다.
트위터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트윗 애호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에 '팩트체크'가 필요하다며 지난 5월부터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경고 딱지'를 붙이거나 삭제 조치했다.
페이스북은 뒤늦게 나섰다. 코카콜라, 유니레버, 버라이즌 등 온라인 최대 광고주들이 페이스북이 그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인종차별 게시글을 방치했다며 '광고 불매(보이콧)'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광고 내 혐오적인 표현을 금지하도록 정책을 바꿀 것"이라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은 잦아들지 않았다. 페이스북의 '안일한' 조치에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 주식시장에서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은 하루만에 67조원이 증발했다.
미 CNBC방송은 이를 두고 "음모론과 가짜뉴스, 혐오 표현에 대한 방치가 인터넷 기업들의 '명운'을 쥐고 흔들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해 그동안 '수수방관' 해왔던 플랫폼들이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태그 운동이 더해지며 변화를 맞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일부로 국내 3대 포털 업체인 네이버, 카카오, 네이트가 연예 뉴스의 댓글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했다. 댓글 서비스를 유지하는 '효용'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악성 댓글에 노출된 일부 연예인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네이버는 악성 댓글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가 뉴스 기사에 쓴 댓글 이력을 전면 공개하고 있다. 과거에는 본인이 쓴 댓글에 대한 공개 여부를 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본인 뜻과 상관 없이 모두 노출된다.
네이버는 이 같은 댓글 정책 변화 이후 '악성 댓글' 건수가 시행 전 대비 63% 줄었다는 결과를 지난 21일 발표했다. 특히 댓글 이력 공개, 특정인 댓글 차단, 클린봇 업그레이드 같은 시스템이 악성 댓글 노출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카카오는 한 발 더 나아가 '댓글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일부 여론이 마치 전체 여론인 것처럼 호도되는 현상을 막고 다양한 댓글을 첫 화면에 임의로 노출해주기 위해서다. 카카오의 이런 '추천 댓글' 제도는 뉴스에 댓글과 피드백이 발생했을 경우 전체 댓글 중 일정 수 이상의 찬성을 받은 댓글을 임의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기존 정렬 방식에 비해 사용자들이 더 다양한 댓글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밀레니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제품을 구입하는 기업들이 사회 문제에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지 신경 쓴다"며 "기업들도 '사회 참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으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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