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열풍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제시한 ‘밈(meme)’이다. 45년 전에 나온 어려운 학술적 개념은 ‘깡’ 열풍으로 반복해 사용되며 어느새 대중적 용어가 돼버렸다. 밈은 문화적 요소들이 유전자처럼 복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엔 ‘깡’처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나 이미지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2~3년 전만 해도 밈의 영향력은 온라인에 한정됐다.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배우 김영철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한 대사 ‘사딸라’는 버거킹 광고에 등장했다. 가수 양준일은 30년 만에 TV와 광고계를 휩쓸었다. 스쳐간 것들은 어떻게 콘텐츠 시장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이 욕망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콘텐츠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열 현상에 대한 반작용인지 모른다. 창작자들은 과거의 것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대중문화 시장에선 더욱 그렇다. 창작자들은 쏟아지는 콘텐츠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특하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이려 한다. ‘새롭지 않으면 무용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좋은 콘텐츠들은 이전보다 빨리 자취를 감춘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더욱 갈증을 느끼게 됐다. 조금은 촌스러워도, 심장을 세차게 두드리는 직감적인 콘텐츠를 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말이 고루해 보이지만 진리일 수 있지 않을까. 장대한 세월 동안 변화해온 클래식에도 이 얘기는 통한다. 다양한 발전에도 클래식은 한 인물로 귀결된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다.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을 쓴 민은기 서울대 작곡과 교수는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나 바흐의 음악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화성법 같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개성이 담긴 음악을 만들었다. 쇼팽도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바흐의 악보를 챙겼다고 한다.
밈 머신들이 찾고 있는 것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바흐의 음악처럼 잊혀져선 안 되는, 아니 잊힌 줄 알았지만 보편성의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 콘텐츠 말이다. 밈 머신들은 이런 콘텐츠를 발견하기 위해 오늘도 서핑 중이다.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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