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신용 회사채·기업어음(CP)까지 사들이기 위해 조성한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가 본격적으로 자산 매입을 시작한다. 다음달 세아제강을 비롯한 여러 기업의 회사채 발행과정에 참여해 실탄을 지원하기로 했다. 싸늘한 회사채시장 분위기가 개선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PV는 다음달 말 세아제강(신용등급 A+)의 6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매수주문 규모가 발행 예정금액에 못 미치면 팔리지 않은 채권 중 상당물량을 인수할 방침이다. 산업은행이 인수단으로 참여하고,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하면 해당 물량 중 산은이 인수를 약속한 물량을 SPV가 사들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산은의 인수물량이 400억원이고 수요예측에서 팔리지 않은 채권 물량이 500억원이면 SPV가 400억원, 나머지 100억원은 발행 주관과 인수를 맡은 다른 증권사가 나눠서 떠안게 된다. SPV는 세아제강 외에도 현재 지원을 신청한 여러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SPV가 본격적인 지원활동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의 출자를 받아 조성된 SPV는 지난 24일 산은이 선매입해둔 5520억원어치 회사채와 CP를 사들이며 가동을 알렸다. 첫 지원이 산은이 사들인 자산을 옮겨담은 것임을 고려하면 SPV의 운용원칙에 기초한 실질적인 매입은 다음달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SPV는 AA-등급 이상 회사채는 채권시장안정펀드처럼 수요예측에 참여해 매수주문을 넣는 방식으로, A+등급 이하 회사채는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하면 인수단으로 참여한 산은의 인수물량(발행금액의 80%까지 가능)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각각 유동성을 공급한다. 만기 3년 이하 회사채만 매입 가능하며, 한 기업당 지원 한도는 2000억원이다. 2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 100% 이하인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들은 SPV의 가동으로 싸늘한 자금 조달환경이 조금씩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4월 채안펀드 가동 이후 AA-등급 이상 회사채 발행여건은 차츰 안정을 찾고 있지만 이보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 붙어있다. 이달 들어서도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현대일렉트릭 AJ네트웍스 한진 등이 줄줄이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에 못 미치는 매수주문을 받았다. 기업들이 평소보다 크게 금리를 높여 채권을 발행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회사채 금리 역시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7일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연 2.188%로 지난 3월2일(1.728%) 이후 0.460%포인트 올랐다. 이 기간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0.50%로 낮췄음에도 회사채 금리를 끌어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IB업계 관계자는 “기존 산은의 회사채 인수 프로그램과 신속인수제와 달리 SPV의 지원은 기업의 차환에만 한정되지 않는 데다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도 더 많다”며 “SPV의 유동성 공급이 본격화되면 A+등급 이하 회사채 발행시장의 긴장감도 다소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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