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따란 매트 위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제압하려고 기를 쓴다. 상대방의 다리와 몸통을 감싸려는 두 다리에 불끈 힘이 들어가 있다. 상대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손으로 상대의 다리를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서로가 서로를 뱀처럼 휘감고 힘을 겨룬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작가 카미유 앙로(42)의 국내 첫 개인전 ‘토요일, 화요일’에 전시된 조각 및 영상·설치작품 ‘화요일’이다.
뉴욕과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앙로는 영상, 설치, 조각, 드로잉 등을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한 개인의 문제가 지구적 문제가 되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2013년 스미스소니언 펠로십을 통해 제작한 영상 ‘엄청난 피곤(Grosse Fatigue)’으로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았고 2014년 독일에서 백남준 어워드, 2015년에는 에드바르 뭉크 어워드도 수상했다. 오는 9월에는 부산비엔날레에도 참가한다.
그는 특히 천문학을 기반으로 한 해(年), 달(月)과 달리 인위적으로 만든 삶의 주기인 ‘1주일’이라는 시간체계에 흥미를 느끼고 요일마다 사회 안에서 정형화돼 반복하는 인간의 행동유형을 작업에 담아왔다. 이 과정에서 문화인류학, 신화학, 종교, 소셜미디어, 정신분석 이론 등을 참고한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것은 토요일과 화요일이다. 가벽으로 둘러친 전시장 안쪽의 방에서는 ‘안식교’로 알려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를 중심으로 뉴욕과 워싱턴DC, 타히티, 통가에서 촬영한 영상작업 ‘토요일’을 상영한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며 침례를 거행하는 안식교의 예배 장면, 종교 방송의 녹화 장면을 신경검사, 식품 광고, 보톡스 시술, 빅웨이브 서핑, 군중 시위 이미지 등과 결합해 좌절의 순간에 인간이 희망을 찾는 방식을 다각도로 비춘다.
영상에는 비극적 사건을 전하는 헤드라인 자막이 쉼 없이 흐른다. 그렇지만 특정 사건, 사고를 연상할 수 없도록 단어를 해체하고 재배열한다. 파편이 된 단어와 허구의 사건들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흐리고, 가짜뉴스가 넘치는 정보 범람의 시대를 시각화한다.
전시실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화요일’은 20분 길이의 영상과 일련의 조각,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 설치로 구성된 작품. 영어 ‘Tuesday’의 어원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쟁과 승리의 신인 ‘티르(Tyr)’다. 그래서 화요일은 인류의 시간에서 힘과 권력의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돼왔다고 앙로는 해석한다. 숨가쁘게 달리는 경주마와 매트 위에서 훈련하는 주짓수 선수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엮은 영상은 이를 상징한다. 서로 뒤엉킨 두 선수의 신체를 형상화한 조각 두 점이 전시장 바닥의 매트와 허공에 매달려 있다.
전시장 둘레의 벽에는 앙로가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공개하는 수채 드로잉 연작 ‘애착 세계’와 ‘유축’이 걸려 있다. 2019년 엄마가 된 이후 작업한 것들로, 아이와의 친밀한 접촉과 보살핌에서 느끼는 감정이 담겨 있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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