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救世主)’. 세계 최초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그랜드슬램+올림픽 금메달)’을 달성한 박인비(32)가 남편 남기협 코치(39)를 부르는 말이다.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 후 4년간 겪었던 지독한 슬럼프를 약혼 뒤에 극복한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만은 아니다. 자상한 남편은 물론 전담 스윙 코치로서 가정과 필드에서 ‘1인 2역’을 완벽하게 하는 남씨에 대한 존경까지 듬뿍 담긴 애칭이다.
지난 2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호주여자오픈 우승 이후 165일 만에 필드에 돌아온 박인비의 캐디백은 남편이 멨다. 박인비는 “5개월 만에 이뤄진 경기여서 긴장이 살짝 됐는데 남편이 곁에 있어 큰 힘이 됐다”며 “캐디로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100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 작전회의’는 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박인비는 15번홀(파5)과 16번홀(파3)에서 온그린에 성공했고, 각각 4.5m와 3m 버디 퍼트를 떨어뜨리면서 잃었던 타수를 모두 만회했다. 아이언샷을 가다듬은 박인비는 더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18번홀(파4)에서 아이언샷을 핀 옆 4m에 붙이며 버디를 낚았고, 3번홀(파4) 5번홀(파3) 8번홀(파3)에서도 한 타씩 줄였다.
박인비는 “샷감과 퍼트감을 가다듬는 단계”라며 “8월과 9월에 LPGA 메이저대회가 열리는 만큼 컨디션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이소영(23)도 7언더파를 쳐 유해란과 함께 공동 선두로 나섰다. 이글 1개를 잡았고 버디도 5개 적어냈다. 그는 지난 5월 E1채리티오픈에서 유해란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이소영은 “티샷이 페어웨이에 100% 안착하면서 보기가 없었다”며 “투어 휴식 기간에 시간을 내 이틀간 코스를 돈 것이 적응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조아연(20)은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신인왕 조아연은 올 시즌 지독한 슬럼프에 시달렸다. 출전한 8개 대회에서 커트 탈락만 네 번. 하지만 조아연은 이날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공동 2위에 올랐다. 8번홀(파4)에서 35㎝ 파퍼트를 놓친 것과 18번홀(파4)에서 공동선두가 될 수 있었던 버디 퍼트가 홀을 때리고 튕겨나온 게 아쉬움을 남겼다. 한진선(23)이 버디만 6개 잡아 조아연과 같은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골프 실력보다 매력으로 주목받던 유현주도 이날 무결점 플레이를 했다. 유현주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으며 박인비, 김효주(25) 등과 공동 6위에 올랐다.
제주=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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