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집 비우겠다"…수도권 전세난민 속출

입력 2020-07-30 17:39   수정 2020-10-05 16:29


전·월세 신고제와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3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4년8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뛰었다. 인기 단지의 전세보증금이 1주일 새 2억원가량 오르는 등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57주 연속 상승했다.

한국감정원은 이달 넷째주(27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이 전주 대비 0.17%로 집계됐다고 30일 발표했다. 2015년 11월 첫째주(0.17%) 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행정수도 이전 기대가 쏠린 세종은 전세가격이 2.17% 올라 전국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울산(0.34%) 대전(0.33%) 경기(0.24%)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14% 상승했다. 전주(0.12%)보다 오름폭을 키웠다. 강동구(0.28%) 강남구(0.24%) 송파구(0.22%) 등 강남권이 많이 올랐다.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면적 59㎡는 지난 17일 보증금 8억7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2억원 이상 오른 11억원에 전세 매물이 나와 있다. 행당동 서울숲리버뷰자이 전용 84㎡ 전세도 26일 8억2000만원에 거래가 성사된 뒤 1억원 이상 호가가 올랐다. 도곡동 D공인 대표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에 전세금을 올리려는 집주인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며 “계약만료일이 내년 1월인 전세 물건까지 모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신규 세입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매물이 귀해지면서 거래량도 크게 줄고 있다. 반전세(보증부 월세)와 월세 물건조차 귀한 상황이다. 서울부동산광장에 따르면 7월 서울 전세 거래량은 이날까지 561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194건)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2월 1만3656건에 달했던 서울 전세 거래량은 3월 9795건, 6월 7942건 등으로 급감하고 있다.

전세의 월세 전환도 늘어나 강남구 전체 전·월세 거래에서 반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달 18%로 전달(14%)보다 높아졌다.
'임대차 3법' 닥치자…대치·목동, 전세 사라지고 월세마저 품귀
전세 매물 일제히 자취 감춰…"전·월세 시장 자체 붕괴 우려"
전·월세 신고제와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3법’의 시행을 앞두고 전국의 전·월세 시장이 폭주하고 있다.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과 지방 전체로 전세 대란이 번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으로 전·월세 물량이 크게 줄어들어 임대차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전세보증금이 크게 오르거나 반전세(보증부 월세) 또는 월세 전환이 증가해 세입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임대차 3법이 부른 전세 대란
30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이달 넷째주(27일 기준) 아파트 전세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에서 시작된 전세 대란은 수도권·지방광역시로 퍼졌다.

경기지역 전셋값은 서울에서 밀려난 세입자 수요가 몰리면서 전주 대비 0.24% 올랐다. 서울 강남권으로 출퇴근하기 쉬운 하남시가 0.91%, 구리시는 0.48% 뛰었다. 용인 수지구도 신분당선이 지나가는 동천동과 상현동 아파트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0.42% 상승했다.

지방광역시 중에선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많은 울산(0.34%)과 대전(0.33%)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울산 매곡동 드림인시티에일린의뜰2차 전용 84㎡는 지난 20일 전세보증금 2억8400만원에 거래돼 한 달 전보다 4000만원가량 올랐다. 단지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며칠 새 매물을 모두 거둬들여 1100가구 중 전세 물건이 딱 하나 있다”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있는 세종시는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급등했다. 전셋값은 2.17%, 매매가격은 2.95% 올랐다. 둘 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세종시 어진동 더샵레이크파크 전용 110㎡의 전세보증금은 지난달 3억5000만원에서 이달 23일 4억원으로 5000만원가량 뛰었다. 현재 전세 물건은 4억5000만원에 나와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4% 오르며 57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 래미안마포리버웰 전용 84㎡는 지난 21일 보증금 8억9000만원에 거래됐지만 현재 전세 매물 시세는 10억원이다. 이달 초 전셋값이 8억원 수준이던 것에 비해 2억원이나 올랐다.
전세 매물 ‘제로’ 단지 속출
일부 인기 지역에선 전세 매물이 아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자녀 교육 임대 수요가 높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등 학군지가 대표적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현재 4424가구 중 전세 매물이 ‘제로(0)’다. 이 단지 전용면적 76㎡는 기존 전세가격이 5억~6억원에 형성돼 있었으나 대부분 보증금 3억5000만원에 월세 140만원을 내는 등의 반전세로 전환됐다. 이 단지는 준공한 지 40년이 지나 집값에 비해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교육을 위해 이주하는 수요가 많다.

인근 선경, 대치우성, 쌍용아파트 등도 전세 매물이 품귀다. 대치동 S공인 관계자는 “임대차 3법이 통과된다는 소식에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한다”며 “어쩔 수 없이 아파트 대신 빌라 전세를 알아보는 세입자도 많다”고 했다.

또 다른 학군지인 목동도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있다. 목동신시가지2단지 전용 95㎡는 기존 8억~8억5000만원짜리 전세가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50만원 등의 반전세로 전환됐다. 목동 M공인 관계자는 “월세 100만원이 넘지 않는 반전세를 찾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30일 기준 대치동 전세 매물은 한 달 전 1464건에서 896건으로 38.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천구도 2341건에서 1831건으로 21.8% 줄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양도세 비과세·재건축 실거주 요건 강화 등에 이어 임대차 3법까지 예고되면서 전세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전세 물량이 급감하고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은지/이유정/신연수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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