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에서 청소·미화·기관 경비 업무 등을 맡고 있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과 ‘정년 65세 연장’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원구서비스공단 노동조합은 지난 29일부터 구청 1층 로비를 불법 점거하고, 심야 술판을 벌이는 등 구청 업무를 마비시키고 있다. 노원구는 이들의 요구가 과도해 절대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다른 자치구들도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노조의 요구를 노원구가 들어주게 되면 비슷한 사태가 다른 자치구로 들불처럼 번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상계동 노원구 청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청사 건물 앞에선 노조가 설치해놓은 대형 스피커를 통해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청사 1층 로비에선 빨간 조끼를 입은 노조원 70여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큰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청사를 찾은 구민들이 길목을 막고 앉아 있는 노조원들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도 보였다.
노조는 전날 밤 구청 로비에서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경제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노원구청 CCTV 영상에는 전날 밤 9시께 노조원들이 청사 1층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노원구 관계자는 “청사를 불법 점거한 것도 모자라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며 “노조가 집회를 시작한 지난달 말부터 노원구청의 업무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고 토로했다.
구청 근처에 있는 학교와 어린이집 등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노원구청직장어린이집 주임교사는 “노조원들이 어린이집 앞 화단에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아이들과 교사 모두 고통받고 있다”며 “큰소리를 내는 노조 탓에 어린이집에 오는 게 무섭다고 우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은 주로 현장 업무를, 일반직은 조직 관리와 공단 운영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며 “하는 일은 물론 채용 방식과 근무조건 등이 명확히 다른데 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년을 65세로 늘려달라는 요구는 노인 일자리 창출 기회를 뺏고, 기득권만 보호하는 이기적인 주장이라는 게 노원구의 얘기다.
비용도 문제다. 노원구에 따르면 노조 주장대로 157명을 무기계약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하면 한 사람당 1270만원씩 총 20억원의 예산이 매년 추가로 소요된다. 노원구서비스공단은 지난해에만 74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설이 대부분 문을 닫아 한 달에 5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노원구의 재정자립도는 15.8%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최하위권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사태를 겪으며 구민들과 계속 소통해왔지만 노조 요구안에 동의하는 구민은 거의 없다”며 “연봉 3300만원을 받는 이들에게 세금으로 1200만원을 더 주겠다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느냐”고 강조했다. 오 구청장은 대학 시절 연세대 부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옥살이까지 겪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노조 활동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지만 부당한 요구를 무조건 들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서울의 다른 자치구들은 노원구의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노원구가 노조에 백기 투항할 경우 다른 자치구에서 비슷한 업무를 맡고 있는 무기계약직들이 같은 요구를 하며 대거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노원구는 2017년 서울 25개 자치구 중 처음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문재인 정부 기조에 발맞춰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곳”이라며 “노원구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다른 자치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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