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 중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31일 전격 시행되면서 임대차 시장이 큰 혼란에 휩싸였다. 나가겠다던 세입자들이 “2년 갱신을 청구하겠다”며 기존 구두계약을 허물자 집주인들은 “직접 들어가 살 테니 비워달라”며 맞서는 등 양측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전날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날 관보까지 찍어 공포하면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는 곧바로 시행됐다.
지난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지 단 이틀 만에 시행되면서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시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한 세입자는 전세기간이 1년6개월이나 남았는데도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황당한 집주인의 내용증명을 받았다. 광진구의 한 세입자는 갱신청구 기한 등이 헷갈려 하루종일 임대차 3법 내용을 찾아봐야 했다.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 전세계약을 맺기 위해 집수리에 응하지 않거나 전세자금 대출에 동의하지 않을 태세다. ‘면접’을 해서라도 임대료를 일정 이상 올릴 수 있는 세입자만 가려 받겠다는 분위기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은 갱신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실입주까지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임대차 3법 때문에 쫓겨나는 세입자가 속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적이 된 가운데 가파른 전셋값은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7월 넷째주(27일 기준) KB부동산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29% 올라 54주 연속 상승했다. 지난주(0.26%)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송파구가 0.62%로 가장 많이 올랐고 도봉구(0.53%), 강동구(0.44%), 용산·강북구(0.43%)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 지역의 전세 공급 부족은 2015년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이번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전주에 이어 180.1을 기록했다. 2015년 11월 둘째주(183.7) 후 4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 지수는 기준선인 100을 넘을수록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거나 반전세와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백마공인 관계자는 “2~3개월 사이에 전셋값이 1억원 가까이 상승하고 반전세와 월세 비중이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 전셋값은 7월 21일 15억6000만원에 최고가 계약됐다. 지난 6월 14억원 대비 1억6000만원 상승했다.
지난 한 달 새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전셋값이 1억5000만원 이상 오른 강동구 집주인들은 대거 실입주를 시작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A집을 전세로 내놓고 또 다른 B집의 세입자를 내보낸 뒤 실입주하는 방식이다. A집은 갱신 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고 시세대로 전셋값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외곽 지역의 전세가격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은평 뉴타운 기자촌 11단지 전용 84㎡ 전셋값 호가는 5억2000만원을 넘어섰다. 직전 거래보다 7000만원 가까이 상승했다.
광진구 자양동에 사는 조모씨(49)는 아직 전세 만료가 6개월 이상 남았지만 집주인에게 언제 갱신청구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혹시라도 청구 기간을 잘못 알고 있는지 임대차 3법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 조씨는 “규정이 너무 복잡하고 모호해 누구에게 확인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대출 부동의와 웃돈 이면계약 요구 등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집주인이 전세가격을 올려받기 위해 전세대출에 동의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31일 설명자료를 내고 “세입자가 전세계약 갱신 시 기존 전세대출을 그대로 이용(연장)하는 것은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지 않고, 대출을 증액할 때도 반드시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규 전세계약 때는 해당하지 않아 우려가 여전하다.
집주인이 세입자와 이면계약을 맺고 추가 월세를 요구할 수도 있다. 세입자 역시 전세 만기 전 집을 보여주지 않거나 퇴거하는 조건으로 이사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전세 물량이 줄고 전셋값이 상승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의 골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정철/신연수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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