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이 꽉 잡고 있는 'EUV 포토레지스트', 삼성전자 뛰어드나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0-08-01 09:14   수정 2020-10-08 13:26


이번주 반도체 업계 이슈 세 가지를 짚어본다. 삼성전자의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업체 투자, 급락한 D램 고정거래가격, 미국 엔비디아의 ARM 인수설 등이다.
① 삼성전자, EUV 포토레지스트 직접 개발하나
"고감도 고성능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며 기술우위를 확보하겠다."

지난 30일 열린 삼성전자 2분기 콘퍼런스콜(전화 실적설명회)에서 한진만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 전무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한 D램 생산' 일정을 설명하면서 꺼낸 말이다. 포토레지스트는 감광액이라고도 불리는 반도체 노광공정의 핵심 소재다. 빛을 쬐면 녹거나 반대로 녹지 않는 물질로 변하는 소재다. 웨이퍼에 포토레지스트를 바르고 회로 모양대로 빛을 쬐면 사진이 찍히듯 반도체 원판에 회로 모양이 인쇄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회로선폭 7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정에서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한다. EUV 노광장비는 광원으로 극자외선을 쓰기 때문에 기존 노광장비와 비교해 세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고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작업을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고 대당 가격이 1500억~2000억원 정도인데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장비다. 지난해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공정 미세화를 위해 EUV 노광장비를 주문했지만 미국 정부가 네덜란드 정부에 '중국 판매 재고'를 요청하면서 무산되기도했다.

EUV 장비를 활용한 노광공정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를 만들 수 있는 국내 업체는 현재 없다. 일본 TOK(도쿄오카공업), JSR, 신에츠 등 등 일본 업체 의존도가 90% 이상으로 절대적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수출 규제 품목에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수출 규제 이후 글로벌 화학업체 미국 듀폰이 국내에 포토레지스트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했지만 언제 양산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가 공식 석상에서 'EUV를 통한 D램 생산'과 함께 '포토레지스트 개발'을 언급하자 반도체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에 문의 결과 "독자적으로 개발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고성능·고감도'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공정에 투입할 수 있도록 협력사와 긴밀하게 협의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이미 일본업체의 고품질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개발'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뭘까. 장기적으로 일본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일본 업체들을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의 '정치적인 갈등'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업체에 90% 이상 의존하는 상황은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삼성전자는 미국 포토레지스트 전문 스타트업 '인프리아'에 대한 지분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인프리아는 EUV용 '무기(無機) 포토레지스트'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엔 일본 업체의 '유기 포토레지스트'보다 인프리아의 무기 포토레지스트의 성능이 뛰어나고, 삼성전자의 테스트가 '마무리 단계'라는 국내 정보기술(IT) 전문 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두 번째 가능성은 현재 EUV용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동진쎄미켐 등에 대한 추가 지분투자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삼성전자가 최근 '동반성장', '상생'을 강조하며 반도체 협력사들과 기술개발 MOU를 체결하고 협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1일엔 노광공정 핵심 소재인 '블랭크마스크' 전문 국내 업체로 EUV용 블랭크마스크를 개발 중인 에스앤에스택에 659억원, 웨이퍼 검사장비업체 와이아이케이에 473억원을 투자했다. 삼성전자가 소재, 부품, 장비 업체에 투자한 건 2017년 솔브레인과 동진쎄미켐 지분 4.8%씩을 매수한 이후 3년 만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협력사에 대한 추가 투자를 단행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일본 제품을 배척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면 다변화할 필요성이 크다"며 "미국이나 국내업체를 육성하는 게 삼성전자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② 5% 급락한 D램 가격, 조정국면 길지 않을 것
D램 고정거래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31일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DDR4 8Gb 기준) 고정거래가격은 3.13달러로 지난달보다 5.4% 하락했다. D램 고정거래가가 떨어진 건 지난해 10월 이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서버용 D램(DDR4 32GB) 가격도 전월 대비 6.4% 하락한 134달러로 집계됐다.

D램익스체인지가 발표하는 고정거래가는 기업들이 D램을 대량으로 거래할 때 활용하는 ‘계약가격’의 평균값이다. 올 상반기 가격은 17.8% 상승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데이터센터용 ‘서버 D램’ 구매를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고가 쌓인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최근 구매를 자제하면서 7월 들어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이는 것도 고정거래가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의 관심은 '향후 전망'이다. D램익스체인지 산하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전반적인 가격 전망에 대해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가 영향을 미치며 D램값이 하락했고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8월에도 가격이 5~7%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가격 하락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업체들의 하반기 실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18년 3분기 13조6500억원에 달했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영업이익이 2019년 3분기 3조500억원으로 1년 만에 77.6% 급락한 것도 D램 가격이 2018년 9월 8.19달러에서 1년 뒤 2.94달러로 64.1% 떨어진 영향이 크다.

하지만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D램 세계 1, 2위 업체들이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반기엔 스마트폰 판매가 살아나고, 플레이스테이션5 출시 영향으로 게임업체들의 반도체 구매가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버용 D램 구매도 잠시 주춤하겠지만 장기적으론 꾸준히 수요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3일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SK하이닉스 관계자의 발언이다.

“하반기 평균판매가격 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여진다. 과거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발생했던 수요·공급의 업·다운 조정이 작년말 기점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중장기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성장 추세가 견조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2차 대확산 등 일부 외생적인 불확실성이 없으면 짧은 조정기간을 거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구체적인 하락폭과 수치를 자세히 언급하기 어렵지만, 올 하반기를 저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웠지만 꾸준한 D램 수요 증가를 예상했다. 지난 30일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 관계자의 발언이다.

“하반기 모바일 D램 수요가 회복되고 그래픽 D램 시장도 성장할 것이다. 서버D램은 코로나19에 따른 대외불확실성 가속과 비대면경제 가속화가 있다. 고객사 제고 수준은 일부 증가했다. 고객사에서 하반기 재고를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따라 수요에 일부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픽 수요는 계속 커지고 모바일(스마트폰)도 중저가제품 중심으로 회복되고 있다. 중국 5G 회복으로 하반기 수요 회복세가 예상된다.”

다만 가격과 관련해선 ‘불확실성’에 무게를 뒀다. 한진만 삼성전자 전무의 발언이다. “아직 시장 전반에 걸쳐서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미중 무역분쟁 등 다양한 불확실성 존재한다. 고객사 재고 투자전략도 지속적으로 변동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언제가 가격 변곡점인지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 가격변화 요인으론 크게는 대외환경의 전개, 공급사와 고객사가 갖고 있는 메모리재고 등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한다.”
③ 엔비디아가 ARM 인수하나
ARM 매각설이 확산, 증폭되고 있다. 유력 후보론 미국의 GPU(그래픽처리장치) 전문업체 엔비디아가 꼽힌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FT)가 최근 ARM의 유력 인수후보로 엔비디아를 꼽았다. FT는 31일(현지시각)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매물로 내놓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이 미국의 그래픽카드 업체 엔비디아와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인수 가격까지도 제시했다. 이 신문은 “인수 예상 가격은 320억달러로 5년전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적었다.

엔비디아는 게임용 GPU 생산에서 최근 AI(인공지능) 고도화에 필수적인 머신러닝용 GPU로 방향을 틀면서 ‘4차 산업혁명의 총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27일 기준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2563억달러(약 306조원)로 인텔(2098억달러·약 251조원)을 가볍게 제치고 세계 반도체 기업 중 3위에 올라 있다. 대규모 그래픽 처리가 필수적인 자율주행차용 반도체 시장에도 진출했다.



사실 엔비디아의 소프트뱅크 인수설은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3일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도 엔비디아가 ARM 인수의 유력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6년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홀딩스'를 320억달러(약 39조원)에 인수했다. ARM은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거의 모든 반도체의 기본 설계도를 제작하고 관련 특허를 팔아 수익을 내는 기업이다.

4G, 블루투스 등과 관련한 표준필수특허를 갖고 있는 통신 반도체 강자 미국 퀄컴, '엑시노스' 반도체를 만들며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유력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엔비디아까지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노하우를 더해 칩을 만든다.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성공할 경우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GPU 전문으로 했던 엔비디아가 사업영역을 확장해 반도체 설계 특허를 사실상 독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암호화폐 등에 쓰이는 그래픽 프로세서 라인업을 다변화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FT에 따르면 ARM 공동 창립자인 헤르만 하우저는 "이번 인수합병은 영국이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을 최고의 입찰자에게 매각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간 인수합병 협상은 결렬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려면 32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각 국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이 ‘시장의 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두 회사 간 결합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미국 퀄컴이 2018년 자동차 반도체 기업인 네덜란드의 NXP를 인수하려다 중국 경쟁당국의 반대 때문에 무산된 사례도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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