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를 대표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34년 만에 종료된다. 이 작품을 상징하는 거대한 샹들리에도 ‘오페라의 유령’ 전용 공연장인 허 마제스티 극장에서 1986년 9월 초연 이후 처음으로 떼어낸다.
런던 일간지 이브닝스탠더드와 공연사이트 와츠온스테이지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뮤지컬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는 최근 “‘오페라의 유령’은 슬프게도 중단된다”고 밝혔다. 초연 이후 웨스트엔드 무대에 계속 올랐던 ‘오페라의 유령’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4개월째 중단된 상태다. 내년 시즌 공연도 열리지 않고 전면 취소됐다. 매킨토시는 “향후 다시 올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재개 시점 등은 불투명하다. 이 작품의 작곡자이자 공동 제작자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매킨토시의 발표에 대해 “찬란했던 원작을 잘 보관하고 런던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을 고대하겠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런던 공연예술계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포함해 뮤지컬 ‘빅4’로 불리는 ‘캣츠’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을 제작한 매킨토시는 이번 사태로 제작사의 스태프와 직원, 배우 60%를 일시 해고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 6월 엄격한 ‘객석 거리두기’ 등 방역 지침 준수와 함께 실내 공연 재개를 발표했다. 하지만 웨스트엔드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많은 논쟁이 일고 있다. 웨버는 지난달 23일 자신이 운영하는 런던 팔라디움 극장에서 정부의 방역 지침을 적용해 ‘오페라의 유령’ 시범 공연을 했다. 관객 500명만 초대해 거리두기를 시행하며 공연했다. 지난 3월 공연장 폐쇄 이후 처음 올리는 무대였다. 하지만 방역에 대한 불안이 큰 상황에서 이뤄진 이 시도를 두고 일부 매체는 관객들이 ‘실험용 쥐’가 됐다고 지적했다. 매킨토시도 이 공연을 “참사”라며 “이런 방식의 공연에 전적으로 반대하며 웨스트엔드에선 거리두기를 하면서 공연하기 어렵다는 믿음이 강해졌다”고 혹평했다.
이 같은 논쟁의 바탕엔 영국 정부의 공연예술계 지원책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런던 공연장과 공연 단체의 줄도산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달 5일 영국 정부는 15억7000만파운드(약 2조4500억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런던 공연계에서는 “이 정도 지원만으로는 여전히 회복이 어렵다”며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선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팀 내한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오는 8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 오르고, 19일부터 9월 27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세계에서 이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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