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정보통신(IT) 업계로 확산하고 있다. 내수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국 IT 기업들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격화되는 갈등 국면 속에서 미중 사이에 낀 한국에 어떤 영향이 올지 국내 IT기업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중국 글로벌 IT 기업들에 압박 높이는 美
지난 2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는 공식 성명을 통해 중국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와 틱톡 매각 협상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협상은 다음 달 15일께 마무리 될 예정이다. 양사의 합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개인정보 유출과 국가안보 우려를 들어 미국에서 틱톡 사용금지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15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틱톡은 세계적으로 다운로드 수가 20억건을 넘고, 미국 내 다운로드 수만도 1억6500만건에 달하는 현재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 하나다. 미국에서 1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어 미국 내 하루 활성 이용자가 8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틱톡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31일 미국 내에서 틱톡의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개인정보 유출과 국가안보 우려를 제기한 것. 틱톡을 통해 미국인 정보가 중국 공산당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다. 중국 기업은 중국이 2017년 6월부터 시행한 사이버보안법에 따라 자료를 중국에 저장해 놓고, 정부 요청이 있으면 이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틱톡 때리기'의 표면상의 이유는 바이트댄스의 개인정보 관리 의혹이지만, 속내는 사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처럼 중국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도 두각을 보이는 중국 IT 업체들에 대한 견제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트댄스가 틱톡의 미국 사업 지분을 전량 미국 기업에 넘긴다면 미국 틱톡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는 모두 미국 내에서 미국 기업에 의해 관리된다. MS가 틱톡을 인수하면 미국 정부가 우려하는 정보 유출과 안보 우려 등 문제가 상당수 해결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MS의 틱톡 매각 타진 발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트댄스에 "MS에 틱톡을 45일 내에 팔라"면서도 미국 정부 소속 '외국인 투자위원회'에 해당 거래 감독을 맡겼다. 이 기관은 거래가 정당하지 못하다 판단할 경우, MS와 바이트댄스가 어떠한 협의점을 찾아내도 이를 무산시킬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의 글로벌 IT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경제 외교적 관점에서 미국 정부의 '틱톡 때리기'를 봐야한다는 시각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트댄스는 세계 최초로 헥토콘기업(기업가치 100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이다. 미국은 틱톡에 이어 중국 채팅서비스인 '위챗'도 제재하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中 "틱톡 금지 현실화되면 보복 조치"
바이트댄스는 전날 밤 성명을 통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법률이 부여한 권리를 이용해 회사의 합법적인 권익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엄격하게 (미국) 현지의 법률을 준수한다"고 했다. 동시에 페이스북이 다음 달 틱톡과 유사한 앱을 출시하는 것을 두고 "틱톡을 베낀 유사품"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바이트댄스 측이 구체적 방안까지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향후 틱톡이 미국에서 실제로 차단되거나 현재 진행 중인 MS를 대상으로 한 매각 절차에 제동이 걸린다면 미국 정부 등을 상대로 법적 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 정부 역시 "미국 내 틱톡 금지가 현실화 된다면 미국이 전 세계 기업들에게서 신뢰를 잃을 것"이라며 발끈했다. 보복 조치도 예고한 상태다.
지난 1일 중국 앱스토어에선 애플의 3만1301개의 앱이 삭제됐다. 이 중 애플이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게임앱이 2만6937개로 삭제된 앱의 86%를 차지했다. 애플에 대한 조처는 새로 규정된 '판호 의무화'에 따른 것이라 미국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성격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애플은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중국 앱스토어 거래액은 약 293조 원(2460억 달러)로 전체의 47.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 SNS 업체를 이미 원천 차단한 상태다. 미국의 대표적인 SNS인 트위터 유튜브 페북은 중국시장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중국은 중국기업의 경우 공산당에 불리한 콘텐츠를 삭제할 수 있지만, 미국 기업의 경우에는 불가능해서다. 중국에서 트위터와 유사한 웨이보가, 유튜브와 유사한 유쿠가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뿐 아니라 미 우방국들이 잇따라 '틱톡 퇴출' 움직임에 합류하고 있다는 게 중국으로선 부담이다. 네델란드와 호주 정부는 틱톡 사용제한 등을 검토 중이다. 인도는 지난달 안보 상의 이유로 틱톡을 포함한 중국 앱에 대한 사용을 금지시킨 바 있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최근 틱톡을 포함한 중국 앱 이용 제한을 정부에 제안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韓에서도 뜨거운 '틱톡 열풍'…"추가 제재는 어려울 듯"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는 국내 기준 지난 4월 기준 '틱톡' 국내 이용자는 300만명을 넘어섰다. 500만명인 국내 10대 청소년의 절반을 넘는 숫자다. 아이돌 블랙핑크 트와이스 세븐틴 선미 영탁 우주소녀 등도 컴백을 앞두고 모두 틱톡 영상을 업로드 했다. 국내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올 초 가수 지코가 마마무의 화사, 청하, 산다라박 등과 커플 챌린지 영상을 찍은 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확산됐다.우리나라에서도 틱톡에 대한 관심은 뜨겁지만, 틱톡은 국내에서도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유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15일 틱톡이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만 14세 미만의 아동의 개인정보 6000여건을 불법으로 수집했다며 틱톡에 1억8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바이트댄스에 추가 제재를 가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틱톡은 사용자들의 정보가 중국이 아닌 미국과 싱가포르에 있는 서버에 저장돼 있어 중국으로의 정보 유출 여부 확인이 어려워서다. IT업계 관계자는 "우선 틱톡이 강력하게 관련 내용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틱톡 때리기' 전선에 합류한다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보복도 우려된다. 로이터 통신은 방통위의 '철퇴' 직후 "비, 트와이스, 마마무, 현아 등 일부 K팝 스타들의 계정들이 더우인(영어버전 틱톡)에서 비, 트와이스, 마마무, 현아 등 일부 K팝 스타들의 계정이 차단돼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최근 '반(反) 화웨이' 전선을 구축해 우방 국가에 화웨이 5G 장비를 걷어내라고 하는 것처럼 '반 틱톡' 전선에 참여하라고 직접 압박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서울과 수도권 북부지역에서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LG유플러스를 직접 겨냥해 "우리는 LG유플러스 같은 기업이 믿을 수 없는 공급업체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길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는 SK와 KT를 '깨끗한 업체'로 공개 거명하며 LG 유플러스의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을 촉구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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