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성이 큰 강제징용 배상 갈등과 달리, 과거 뉴질랜드 주재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의혹은 갑자기 불거져나와 국민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지난달 28일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통화에서 이례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 주말엔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나서 “(한국의 피혐의 외교관이) 뉴질랜드에 와 조사를 받으라”고 재차 압박했다. 파장이 커지자 외교부는 어제 부랴부랴 해당 외교관을 직위해제하고 필리핀에서 귀국하도록 조치했다. 물의 야기에 따른 인사조치라지만 그동안 뭐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두 문제는 전혀 다른 사안임에도 한국의 외교력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잘 보여준다. 작년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우리 정부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에 주력했을 뿐, 징용 피해자 소송의 불씨는 고스란히 남았다. 자산 압류로 사태가 악화할 조짐인데도 외교라인을 가동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양국 정부와 기업이 보상에 참여하는 문희상안(案) 등 절충 노력도, 외교관계 복원 물밑 시도도 없었던 것이다.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은 성추행 외교관 사태에 이르러 ‘국가적 망신’으로 비화했다. 올초부터 뉴질랜드 방송들이 “한국 정부의 수사 거부”, “부당 비호”라며 보도했으나, 외교부가 “성적 의도는 없었다”고 감싸며 미온적 태도로 일관한 대가다.
이렇다 보니 한국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나라’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 우방과 삐걱대는 불협화음에서도 이런 모습은 확인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한국을 겨냥해 “끔찍한 사람들”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코로나 위기 이후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이 됐다지만, 한국의 사정은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총성 없는 전쟁’인 외교에서 이토록 무력하고 무능하면 국익은 어떻게 지킬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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