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저항은 역사와 함께한다. 세금이 생긴 이래 과도한 징세는 조세저항을 초래했다. 그 저항은 혁명을 부르고 역사를 바꿨다. ‘귀족들의 동의 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고 못박은 영국의 마그나카르타(1215년),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한 보스턴 차(茶)사건(1773년), 프랑스대혁명의 방아쇠가 된 삼부회 소집(1789년) 등은 모두 지나친 세금이 출발점이었다. 우리 역사에서도 구한말의 가렴주구가 동학농민봉기, 부가가치세 신설이 1979년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2020년 여름 대한민국에서도 조세저항이 거세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 국민 조세저항 집회엔 장맛비에도 20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신발을 던지며 “나라가 니꺼냐”고 외쳤다. 서울 대림동에 산다는 한 여성은 단상에서 울부짖었다. “애들 놀이동산 한번 못 데려가고 남편과 33년간 자영업을 했다. 노후에 좀 편히 살아보겠다고 낡은 빌라 몇 채를 사 임대사업을 시작했다. 1년 임대료 수입이 2700만원인데 종합부동산세만 5000만원 내란다. 세금이란 이름으로 내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거다. 이건 폭력이고 살인이다.”
정부·여당은 이번 조세저항을 다주택자 등 투기세력의 반발로 치부하는 것 같다. “1주택자는 세금 변화가 거의 없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식을 보면 그렇다. 투기꾼에게만 세금폭탄을 떨어뜨렸으니 문제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파편은 사방으로 튀고 있다. 세금폭탄으로 수요를 억누르려다 보니 집값이 치솟아 올해 수도권 주택 보유자의 재산세는 20% 올랐다. 전셋값 규제로 전세시장의 매물이 씨가 마르면서 무주택자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조세저항 집회에 나온 시민 상당수는 이런 선량한 피해자다.
조세저항이 불붙은 이유가 세금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금이 부당하다고 느껴져서다. 세금은 국가공동체에 속한 국민이라면 당연히 납부할 의무가 있다. 국방, 치안, 도로 건설 등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지출 재원이어서다. 정부는 이런 세금을 지금 집값 잡기용 벌금처럼 때리고 있다. 과잉금지 원칙 위배 등 위헌 시비까지 일지만 징벌적 부동산세 인상을 밀어붙였다. 국민이 벌금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 세금의 정당성은 퇴색한다.
정부가 무리한 증세 과정에서 조세원칙을 무시한 것도 부동산 세금의 정당성을 훼손했다. 보유세의 과세표준인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임의로 올려 재산세와 종부세를 대폭 인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법률이 아니라 정부 고시를 근거로 했다는 점에서 조세법률주의(헌법 59조)를 위반했다는 논란이 있다. 소득이 실현되지도 않은 집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철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정책 목적상 증세를 할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납세자인 국민 동의가 필수다. 지난 4일 여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종부세법 개정안 등 부동산 증세법을 일방 통과시켰다. 집을 사고(취득세) 보유하고(종부세) 파는(양도소득세) 모든 단계의 세금을 올리면서도 야당과 법안심사조차 안 했다. 국민 동의 절차를 건너뛴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에게 묻지 않은 세금은 필연적으로 조세저항에 부닥친다.
“세금 내는 사람이 애국자이지, 왜 적폐인가.” “평생 모은 내 재산을 정부가 무슨 권리로 강탈하나.” “세금 거부 운동을 벌이자.” 조세저항 집회에서 터져나온 국민들의 외침을 정부·여당은 한 귀로 흘려보내선 안 된다. 징벌 수단으로 썼던 세금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부를 단죄할 수도 있다. 세금은 내는 사람만이 아니라 걷는 정부에도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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