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부고를 알리는 한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사연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임 회장은 당시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도 마음을 많이 썼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됩니다.
1973년 한미약품을 창업한 임 회장은 척박했던 한국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 기업가 가운데 한 분입니다.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가 한국 제약산업의 터를 닦았다면, 임 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의 물줄기를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글로벌 제약사의 약을 가져다 팔거나 제네릭(복제약)에 의존하던 국내 제약회사들이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물꼬를 텄기 때문입니다.
임 회장을 추억하는 지인들이 떠올리는 단어 중 하나는 ‘혁신’입니다. 1967년 임성기약국 문을 열었을 때부터 그랬다고 합니다. 그는 약사로는 처음으로 명찰을 단 하얀 가운을 입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을 처방하겠다는 의지에서였습니다. 뭔가 달랐던 이 약국은 금세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개량신약 시대를 연 것도 임 회장이었습니다. 새로운 약을 직접 만들겠다는 포부로 회사를 세웠지만 글로벌 제약사처럼 신약 연구개발(R&D)은 꿈도 꾸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자본도, 인력도 부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들 제네릭에 매달릴 때 그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뭔가 다르게 만들면 통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개량신약입니다. 약물 성분은 외국의 오리지널약 성분을 그대로 쓰면서 제형을 바꾼 것입니다. 가령 정맥주사제를 피부 주사제로 바꾸거나 약 먹는 횟수를 줄여주는 식으로 개선했습니다.
그에게 붙는 또 다른 수식어는 ‘젠틀맨’입니다. 나이 어린 직원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고 합니다. 업무 과실을 한 임직원에게 대놓고 화를 내거나 욕설을 내뱉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아랫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오너 경영인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나이 어린 직원이라도 일리 있다고 판단되는 말이면 꼭 메모해두고 챙겨 봤다고 합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소 제약사에 그쳤던 한미약품이 한국을 대표하는 신약 개발사로 성장하게 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임 회장은 숱한 역경과 좌절, 성공을 뒤로 한 채 영면에 들었습니다. “신약 개발은 나의 목숨과도 같다”던 그의 말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이 갈 길을 알려주는 메시지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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