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4조원 규모 사솔 에탄크래커(ECC) 설비 인수전에서 결국 고배를 마셨다.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화학사 사솔(Sasol) 및 매각주관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달 초 열린 미국 레이크찰스 ECC 화학단지 지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미국 쉐브론필립스(Chevron Phillips)를 선정했다. 지난달 열린 본입찰엔 국내에서 한화그룹이 유일하게 참여해 막바지 경합을 펼쳤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화그룹은 대신PE와 컨소시엄을 꾸려 실탄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약 4조원의 인수 금액 중 2조원 가량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절반 가량을 복수의 시중 은행을 통해 달러화 인수금융으로 조달하는 구조를 짰다.
실제 한화그룹은 본입찰에서도 지분 50% 대상 가격으로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 이상을 써 냈지만 최종 우협 대상자로 선정된 쉐브론과 가격 격차가 컸다. 이 때문에 본입찰 직후엔 쉐브론과 영국계 화학사 이네오스(INEOS)그룹간 사실상 2파전으로 인수전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에 정통한 관계자는 "한화그룹과 쉐브론간 가격 격차가 컸을 뿐 아니라 매각 측이 요구한 요구사항을 쉐브론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판세가 기울었다"고 설명했다.한화그룹은 원유를 증류해 생산한 납사를 통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납사크래커(NCC) 방식의 사업 구조를 갖췄다. 셰일 가스에서 에틸렌을 생산하는 ECC설비를 인수하면 사업 구조를 다변화해 원가 변동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한화그룹 외에도 LG화학, PEF운용사 SJL파트너스 등도 초기 예비입찰 단계에 참여했지만, 본입찰엔 불참했다.
사솔은 지난 2014년 무렵부터 루이지애나주에 대규모 ECC 투자를 단행했다. 유가 하락 등으로 2015~2016년 공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내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있다. 해당 설비에 투입된 자금만 총 120억달러(14조6000억원)가 넘었지만, 이 과정에서 모회사의 부채 비율이 급격히 늘며 일부 지분 매각에 돌입했다.
우량 자산을 싸게 인수해올 기회다보니 경쟁도 치열했다. 거래 초반만 해도 해당 지분 가격으로 약 2조원 후반 수준이 거론됐다. 입찰이 진행되면서 글로벌 화학사들의 각축전으로 해당 지분가격만 4조원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전해진다.
가격 외 요소도 국내 업체들엔 부담이었다. 매각 측이 매각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단지 내 고부가 제품은 제외하고 에틸렌 등 범용 제품 위주로 매각에 나서면서 인수 측과 협상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LG화학은 본입찰 참여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국내업체의 인수후통합(PMI)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해당 설비 부근에서 롯데케미칼이 대규모 ECC 설비를 가동하고 있지만, 글로벌 화학사 대비 현지 인력의 통제 문제 등 가격 외 요소에서도 강점을 갖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최종 낙점된 쉐브론은 최근 사솔과 가스액화시설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공동 투자를 발표하는 등 꾸준히 교류를 이어오기도 했다.
차준호/김리안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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