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한 달 넘게 지속된 장마로 밭작물 시세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상추는 보름여 만에 판매 가격이 두 배로 뛰어 금(金)상추가 됐다. 2012년 금(金)배추 파동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적상추 도매가격(4㎏)은 7월 23일 2만6120원에서 이날 4만5860원으로 2주 만에 두 배 가까이(76.0%)로 올랐다.
서울 가락동 농산물시장의 한 엽채류 도매상은 “휴가철이 겹친 이번 주말께 5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4㎏짜리 시금치 한 상자 가격은 같은 기간 1만5680원에서 3만7100원으로 두 배 이상(136.6%)으로 올랐다. 애호박과 얼갈이배추 가격도 같은 기간 각각 120.0%, 83.7% 상승했다.
현장에선 이번 사태가 추석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장마 뒤 폭염이 겹치면 작물이 짓무르면서 출하량이 급격히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채소 가격 급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가까스로 버텨온 식당, 식자재업체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가락동 농산물시장 관계자는 “식자재 납품업체 몇 곳이 쓰러졌다는 말이 들린다”고 말했다.
대형 급식업체와 영세 납품업체 간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급식업체 A사 관계자는 “청경채 상추 등 엽채류 수급과 조달이 어렵다”며 “최대한 단가가 오르지 않도록 버티고 있다”고 했다. 마켓컬리 등 신선식품 배송으로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는 유통업체들도 고민이 커질 전망이다.
통계청이 지난 4일 발표한 7월 신선식품지수는 112.33(2015년=100)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4% 상승했다. 이 중 채소류는 1년 전에 비해 16.5% 올랐다. 7월까지만 해도 예년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달 들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안성 등 경기 일대를 마비시킨 폭우로 상추밭은 토사와 함께 쓸려나갔다. 이날 오전 7시 기준으로 농작물 6592㏊가 침수됐다. 낙과 59㏊, 농경지 유실 및 매몰이 484㏊에 달했다. 가축 폐사도 57만 마리로 추정됐다.
각종 채소와 과일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4㎏짜리 시금치 한 상자 가격(이하 도매가)은 지난달 23일 1만5680원에서 이날 3만7100원에 거래됐다. 애호박과 배추얼갈이 가격도 같은 기간 각각 114.2%, 83.7%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2012년 ‘금배추 파동’에 맞먹는 현상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시 배추 세 개가 들어 있는 8㎏짜리 한 망이 최고 3만원에 거래됐다. 예년 평균 거래 가격이 4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대 최악의 폭등 수준이었다.
이마트 엽채류 담당 바이어는 “배추나 상추는 장마 기간에 햇빛을 제대로 못 받으면 일부분이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장마가 끝난 뒤 폭염이 길어지면 본격적인 배출 출하 시기에 가격 급등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과일류도 긴 장마의 영향을 받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사과 부사 한 상자(10㎏)의 도매가격은 전주 대비 약 53% 상승했다. 복숭아 월미 한 상자(10㎏)도 전주보다 30%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국내 작황이 좋지 않은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 등 수입을 막고 있어서다. 장바구니 물가 상승이 추석과 김장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봄의 저온 현상과 최근 장마 등의 영향으로 농산물 작황이 부진해 공급이 줄어들었다”며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정 내 농산물 소비 수요가 늘면서 가격 상승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산업에도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김치 공장들은 배추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배추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붓고 있다. 햄버거 등 외식업계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영세 식자재 납품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학교 급식이 중단된 데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얘기다. 대형 급식업체와 식자재 납품업체 간 납품 가격을 둘러싼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는 가격 상승분을 떠안아야 한다.
한 엽채류 도매상은 “대형마트조차 이마트를 빼면 모두 적자를 보고 있다”며 “가격 상승분을 납품 업체에 떠넘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박동휘/박종필/성수영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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