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주 기자]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윤하의 목소리. 공감하기 쉬운 사랑과 이별,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국내 대표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고 있는 그다.
흔히 말하는 히트곡이라면 반짝인기를 끌었다가 흐르듯 지나가 버리기 마련. 그의 노래는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데뷔 17년 차, 대중들의 꾸준한 사랑 덕에 늘 쉴 틈 없이 지내왔던 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이 연달아 취소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게 됐다. 팬들은 많이 아쉬워할 테지만, 그에게는 활동 중 지금이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이라고. 조금 더 여유롭게 다음을 준비할 수 있기에.
당분간 공연에서 그를 만나기는 힘들 테지만 너무 아쉬워 말자. KBS 1TV 교양 프로그램 ‘이슈 Pick, 쌤과 함께’에 출연해 매주 브라운관을 통해 만날 수 있으니.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윤하의 색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Q. 근황
“공연이 거의 다 취소돼서 지금은 작업과 취미 생활 위주로 하며 지내고 있다. 다음 앨범 콘셉트도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작업실 이사해서 매일 출근하고 할 일이 없어도 청소라도 하며 지낸다”
Q.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이 없어진 터라 곡 작업에 더 집중하게 됐나
“그렇다. 공연이 아무리 없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행사나 페스티벌이 있었다. 항상 준비하며 보냈는데 이번에는 조금 붕 뜬 느낌이 조금 있다. 오히려 다음 공연을 열게 되면 어떻게 할 건지 연구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Q. 지금까지는 쉬지를 못했겠다
“거의 그렇다.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술자리에 안 나간 지 꽤 오래됐다. 바쁜 것도 있지만 나이 들수록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아서. 저녁에 일찍 자며 사이클을 맞췄는데 요새는 공연이 많지 않아 조금 늦게 자거나 밤새며 작업을 할 때도 있다”
Q. KBS 1TV 교양 프로그램 ‘이슈 Pick, 쌤과 함께’에 출연한다. 프로그램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말 그대로 ‘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분야 선생님들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다 보니 강연 위주,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내가 하는 역할이 크지는 않다. 나도 그렇게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인터뷰어로 들어가는 것이라 부담 없이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Q. 다양한 분야들의 출연진들과 함께하게 됐는데 어떤가
“유민상, 강유미 씨도 계시고 원래 팬이었던 슈카 님도 같이하게 돼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종혁 선배가 워낙 어른이시니 모두를 아우르신다. 유민상, 강유미 씨는 워낙 재미있는 분들이라 촬영 중간에 애드리브를 많이 넣어주신다. 나는 모범적으로 강연을 듣는 학생 같은 이미지다(웃음). 패널 중 막내다”
Q. 적응하는 데 힘들지는 않았나
“이종혁 선배가 친목을 되게 좋아하신다(웃음). 술자리나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시고. 밥을 먹어도 꼭 같이 먹어야 한다. 처음에는 ‘나는 좀 따로 먹고 싶은데’ 생각하기는 했는데 조금씩 친해지고 있는 것 같다. 3회 차 촬영한 것에 비해서는 선배님 덕분에 많이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다”
Q. 그간 방송 출연은 자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던 거다. 내가 방송 출연을 고사한 건 아닌데 뮤지션 이미지로만 많이 보시더라. 내가 내 얘기 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라 토크쇼에서 ‘저는 말이에요’ 이렇게 끼어드는 걸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내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 듣고 궁금한 걸 물어보고, 주제가 있으니 좋더라”
Q. 음악 관련 예능 출연 계획
“사실 MBC ‘복면가왕’, ‘나는 가수다’,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이래저래 다 출연했다. 최근에 MBC ‘오! 나의 파트, 너’ 출연도 했다. 간간이 얼굴을 내비치는데 러브콜을 선뜻 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많이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Q. 출연해보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
“JTBC ‘비긴어게인’이 되게 좋아 보이더라. 또 TV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김이나 씨가 별밤지기가 되셔서 MBC 표준FM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신다. 내가 별밤지기 하던 시절에 잼 콘서트를 한 적 있는데 잼 콘서트가 부활하면 내가 꼭 나서겠다 얘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뮤지션들끼리 화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Q. 노래방 인기 차트를 보면 늘 본인 노래가 빠지지 않더라.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감사하게도 그렇다. 글쎄 비결은 뭘까? 좋은 작사가분들을 많이 만났던 것. 내 노래 중 그 시대에 메가 히트를 한 앨범은 사실상 1집 이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앨범에서 스테디셀러가 많이 나왔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발매했을 때는 엄청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2~3년 지났을 때 어딘가 차트에 올라와 있다든지, 타이틀곡도 아닌데 알려진다든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더라. 그래서 이제는 정말 차트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Q. 인기곡이지만 부르려면 또 어렵다.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노래를 추천해준다면?
“그래도 오기가 생겨서 자꾸 부르게 되나 보다(웃음). 내 노래가 저음이 생각보다 많다. ‘Home’처럼 잔잔한 그런 노래들”
Q. 노래방 애창곡
“나는 사실 노래방에 갈 일이 별로 없다. 굳이 간다면 인기차트에 있는 곡들을 왜 부르는지 궁금해서 불러보는 거다. 인기순으로 하나씩 불러보다 오는 편이다. 내 노래도 있으면 반가워서 부른다(웃음). 보통 ‘기다리다’가 항상 상위권에 있더라”
Q. 촬영 중 ‘비밀번호 486’이 흘러나오니 반응이 꽤 재미있었다
“모던, 시크 콘셉트였는데 그런 노래가 나오니 조금 웃겼다(웃음). 예전 노래들은 내 어린 시절 일기 같다. 당연히 너무 좋고, 그것도 나고 그 모든 것들을 거쳐왔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있지만 어렸을 때 일기 보면 좀 창피하고 감성적인 페이지를 보면 흑역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않나. 그런 앨범이다. 곡이 낯간지럽다기보다는 그 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패기가 너무 부끄럽다(웃음)”
Q. 싱어송라이터로서 본인 노래 중 가장 애착 가는 노래는?
“‘Home’은 요즘 내가 다시 꽂힌 곡 중 하나다. 그런 가사를 어떻게 그때는 생각했을까. 그 곡을 만들 때는 성숙하고 어른스럽다, 내 영혼이 깃든 곡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생각보다 더 순수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곡이었다. 생각보다 직설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그때 나를 생각했을 때 안쓰럽고 대견한 마음이 혼재돼 있다. 다른 사람들의 성장에도 도움 될 수 있는 배경 음악이 됐으면 좋겠다”
Q. 차기 앨범 계획
“많이 힘이 빠지는데 ‘WINTER FLOWER(雪中梅)(Feat.RM)’도 RM 씨 도움도 있었고 ‘먹구름’도 생각보다 더 많은 분이 사랑해주셨다. 기대도 많이 했고 뿌듯했는데 결과가 좋았는데도 이렇게 코로나 사태로 공백이 생겨버렸다. 해외 공연도 하고 싶고 많은 분과 소통하기 위해 투어도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다 무산돼서 아쉽다. 다음 앨범은 조금 더 고민해야 하고 그사이에 콜라보레이션이라든지 조금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을 들려드리려 한다”
Q. 콜라보레이션해보고 싶은 뮤지션
“챈슬러와 듀엣곡 ‘Walking In The Rain’을 함께했다. 챈슬러는 내가 워낙 좋아해서 러브콜했다. 지난 앨범에 협업했는데 이번에 내가 도울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비에 대한 이야기로 재미있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해보고 싶은 분들은 많은데 비밀로 해서 딱 보셨을 때 깜짝 놀랐으면 좋겠다”
Q. 비와 관련된 음악이라면 에픽하이 ‘우산 (Feat. 윤하)’을 빼놓을 수 없다. 인기에 힘입어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타블로 씨가 솔로곡을 다시 만들어줬다. ‘네 목소리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데 우리만 돈 버는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 나만의 목소리로 채워진 노래를 데뷔 10주년 기념으로 재창작해서 주셔서 지금도 많은 사랑 받고 있다. 내 사주에 물이 부족하다더라. 그래서 이렇게 비로 내가 채워지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웃음)”
Q. 리메이크 계획 중인 다른 음원도 있나
“여러모로 구상 중이다. 활동한 지가 조금 되다 보니 초기 작품들은 조금 이질감이 있더라. 시대가 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 고민 중이다”
Q. 벌써 30대라니 믿기지 않는다. 동안 비결이 있다면?
“어느새 그렇게 됐다. 내가 철이 없기도 한데(웃음).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점이 동안 비결이라면 비결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항상 새로운 걸 많이 하려 한다. 그게 삶의 활력이 되니까. 연애도 마찬가지. 새로운 것들로 결핍을 채우려 하다 보니 쉽게 지치지 않고 심심할 때가 없다. 너무 오래 가만히 있으면 그게 우울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 않나. 그런 것을 최대한 경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Q. 어느덧 데뷔 17년 차, 돌아보면 어떤가
“돌아보면 내 인생처럼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저게 내 삶이었나’ 생각하는 지점도 있고 어떤 것은 엊그제 같은데 정말 오래됐다는 느낌이 있을 때도 있다. 그래도 요즘이 제일 좋고, 앞으로도 요즘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예전에는 스케줄이 너무 많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게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계획해야 움직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있는 것들을 고민할 시간도 있으니 일하는 게 재미있다. 조금 더 자의적으로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Q. 그동안 쉬지를 못해서 스트레스가 많았나
“스케줄 핸들링이 어려워 쉬지 못했던 게 컸다. 갑자기 전화 와서 ‘내일 이거 하자’ 하면 싫다고 할 수도 없다. 현장에 갈 때까지 이해를 못 한 상태에서 간 적도 있다. 그게 시대적인 특성도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조금 더 주먹구구식이 많았다. 최근에는 SNS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시대가 확 한번 바뀌었다. 이런 흐름이 있다 보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어려서 뭔가 수동적이었다가 이런 급류에 되게 정신을 못 차리던 시기가 있었고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도달하게 됐다”
Q.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나
“물만 마셔도, 숨만 쉬어도 힘들 때가 있더라. 그냥 가만히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만의 방법은 몸을 자꾸 움직이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가는 일이다. 양초 공예도 배우게 됐고 내일도 우드 카빙 배우러 간다. 이렇게 온갖 새로운 것들을 접해본다”
Q. 슬럼프
“5집 앨범을 끝마치고 하와이에 갔다. 그 앨범을 만들기 직전까지 엄청 우울했던 시기였고 만들면서도 잘 빠져나오지 못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었는데 만약 떨어져 죽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삶이 정말 중요하더라. 바보 같지만 다 던져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다. 가서 20여 장의 서약서 같은 걸 썼다. 죽으면 책임지지 않겠다, 죽었을 때 소송 걸 수 없다 등 모든 게 내가 죽었을 때를 가정하에 쓰여있더라. 정신이 확 들더라. ‘혹시 사고 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 바보 같았다고 느꼈다. 그날따라 기후도 비도 와서 무섭더라. 몇 시간 정도 기다리는데 희희낙락 놀고 있는 사람이 없고 표정이 다 비슷하더라. 그리고 뛰었을 때 심장 박동과 눈을 떴을 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전경이 내 인생을 많이 바꿔놨다”
Q. 5집 ‘RescuE’에 들어갔던 이야기는?
“8트랙을 내가 작곡, 작사했다. 그래서 정말 내 자식 같은 앨범이다. 힘들거나 답답하면 인천공항으로 드라이브를 하러 가곤 했던 내용이 ‘Drive’에 담겨있기도 하고. 첫 번째 트랙 ‘RescuE’는 내가 이 앨범을 만들기까지 깨닫게 된 내용과 해주고 싶은 말 위주로 적었다. 그 안에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서 2017년 발매했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다시 듣더라. 음원차트 1위 하는 것보다 오래 들어주는 게 훨씬 가치 있더라”
Q. 롱런 비결
“나는 정말 진지한 성격이라 사람들이 놀리기도 한다. 너무 진지하고 정색을 많이 해서 ‘피곤하게 살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타협하지 않았다. 늘 ‘내가 열심히 하는데, 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의 간섭은 잘 쳐냈다”
Q. 많은 후배 가수가 롤모델로 꼽는다. 기분이 어떤가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사실 나도 별거 없다. 후배분들도 결국 버티고 잘해나가다 보면 당연히 올 수 있는 자리다. 내가 특별한 자리에 있고,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여기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정말 내 마음에 드는 대로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특히 신인 시절에는 누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일 자체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처음부터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답은 아니더라. 여기저기 휩쓸리고 치이고 하는 게 너무 힘든 과정이겠지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그에 대한 대우를 당연히 받을 수 있더라. 나를 존경하고 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인생을 살다 보면 충분히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다(웃음)”
Q. 이상형
“자상한 사람. 그리고 양보를 잘하는 사람이 최고 같다. 외모는 키가 크면 좋겠지만 다 필요 없는 것 같다.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 좋더라”
Q. 친한 동료 연예인
“백아연, 김지원. 어디서나 얘기해서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데 그렇게 친하게 지낸다”
Q. 어떻게 친해졌나
“지원이는 첫 회사가 같아서 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데뷔했다. 아연이는 뮤지컬 ‘신데렐라’에서 같은 역할이라 많은 것들을 주고받다가 친해졌다. 두 친구가 약간 성향이 다르면서도 비슷해 같이 만나면 좋을 것 같아 셋이 모이게 됐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올해 계획된 많은 것들을 못 하게 됐다. 공표하지 못한 것들도 되게 많다. 올해에는 좀 더 활발하게 하려고 했는데 팬분들도 사기가 꺾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만날 수 있는 플랫폼들을 계속 찾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 심심해도 사랑을 키우는 기간이라 생각하고 기다려주시면 재미있는 걸 많이 보여드릴 수 있을 거다”
에디터: 나연주
포토그래퍼: 윤호준
영상 촬영, 편집: 어반비앤티(urban-bnt)
의상: 블리다, 레니본, 플라스틱 아일랜드
슈즈: 레이크 넨, 소보제화
주얼리: 앵브록스, 마티아스 FOR 하고
백: 엘레강스 파리
헤어: 위위아뜰리에 홍찬 실장
메이크업: 위위아뜰리에 예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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