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도, 한국을 몰라도…전 세계 안방서 'K드라마 앓이'

입력 2020-08-08 12:37   수정 2020-08-08 12:51

‘사이코지만 괜찮아’(사진)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가 세계 넷플릭스 이용자를 사로잡으며 K콘텐츠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집콕족’의 콘텐츠 수요를 충족시키며 한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김수현 서예지가 주연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14회가 방영된 지난 3일 홍콩 베트남 등 아시아 7개국에서 넷플릭스 시청 1위를 차지했다. 이 드라마의 인기는 아시아를 넘어섰다. 페루에서는 4위, 호주에선 5위, 뉴질랜드 7위, 러시아 8위를 기록하는 등 27개국에서 10위권에 들었다. 190개국에서 서비스하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종합 순위에선 6위까지 올랐다. 한국 드라마로는 역대 최고 순위다.

일본 넷플릭스에서는 지난 6일한국 드라마 세 편이 5위권에 들었다. tvN ‘사랑의 불시착’이 1위,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2위를 차지했고 JTBC ‘이태원 클라쓰’는 4위에 올랐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베트남에선 한국 드라마 다섯 편이 10위권에 들었다. 최신작인 ‘사이코지만 괜찮아’ ‘우리, 사랑했을까’ ‘사랑의 불시착’이 1, 3, 8위에 올랐고 오래전 드라마인 ‘꽃보다 남자’(2009)와 ‘응답하라 1988’(2015)이 순위를 역주행하며 각각 5위와 6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의 류형진 사업전략담당은 “K드라마가 대중성과 작품성에 신선함까지 갖추면서 세계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發 글로벌 '집콕족' K드라마에 푹~ 빠지다
로맨스·호러 등 장르 결합하거나 남북 분단 상황을 소재로 활용

<i>“혐한 분위기에도 드라마는 좋아하는 ‘사랑의 불시착’ 불가사의.” 일본 일간지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16일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한국은 싫지만…”이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K팝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을 전했다. 남한 재벌 여성과 북한 남성 장교의 사랑을 다룬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일본 넷플릭스에서 지난 5월부터 현재까지 콘텐츠 시청 1위를 차지하고 있다.</i>

아사히신문은 남북한 분단 상황을 소재로 활용한 점, 작품 전반에 인간미가 흐른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던 세상이 드라마를 통해 서서히 드러난 느낌이 든다”고 분석했다. 이 드라마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포브스에서 각각 ‘반드시 봐야 할 국제적 시리즈 추천작’과 ‘2019년 최고의 한국 드라마’에도 선정됐다.

K드라마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혐한 감정이 심한 일본과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장벽이 높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등을 통해 K드라마를 새롭게 발견하고 주목하고 있다.
다수 장르와 소재 조합해 신선함 선사

K드라마는 익숙한 장르와 대중성을 갖춘 내용에 독특한 아이디어를 결합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류형진 사업전략담당은 “한국 드라마는 색다른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여러 장르와 소재를 적절하게 조합해 신선하게 다가간다”고 말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로맨스와 호러, 스릴러가 결합됐다. ‘사랑의 불시착’은 로맨스를 기본으로 하지만 남북 분단을 소재로 활용했다.

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 등에 비해 작품 구성이 치밀하고 깊이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류 담당은 “개별 사건 중심인 다른 나라 작품들과 달리 한국 드라마는 첫 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하나의 줄기를 바탕으로 짜임새 있게 연결되는 게 특징”이라며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1일 “‘사랑의 불시착’이 그려낸,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매력”이란 제목의 기사에 우치다 다쓰루 전 고베여대 교수의 분석을 실었다. 그는 “이 드라마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공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협업…세계 시장 동시 공략
K드라마가 일으키고 있는 한류 열풍은 이전과 양상이 다르다. ‘1차 한류’의 주역인 ‘겨울연가’ ‘대장금’ 등이 일본 중국 베트남 등에서 국가별로 시차를 두고 인기를 끌었다면 ‘사이코지만 괜찮아’ ‘이태원 클라쓰’ 등은 세계 곳곳의 시청자를 동시에 사로잡았다. 190여 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를 적극 활용한 효과다. 국내에서 방영 중인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이달 홍콩 베트남 등 아시아 7개국에서 넷플릭스 시청 1위, 일본 2위에 올랐고 페루 4위, 호주 5위, 러시아에선 8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도 K드라마의 콘텐츠 파워를 앞세워 아시아 등을 공략하고 있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50여 편의 자체 제작 콘텐츠를 만들었다. 올 하반기에도 ‘보건교사 안은영’ ‘지금 우리 학교는’ ‘오징어게임’ 등 드라마를 공개한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한국에서 총 4만3000여 명의 창작자와 협업해 K콘텐츠를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K드라마 배우고 싶다”…해외 러브콜 잇달아
한국의 뛰어난 드라마 제작 기법을 공유하고, 함께 작업하기 원하는 해외 제작사도 늘고 있다. 영화 ‘미션임파서블’ ‘터미네이터’,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 등을 만든 미국 제작사 스카이댄스는 CJ ENM, 스튜디오드래곤과 드라마를 공동 제작한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미국판 TV 시리즈로 만든다. CJ ENM 관계자는 “완성된 콘텐츠나 포맷을 판매하는 데서 나아가 국내 처음으로 미국 유명 제작사와 공동으로 드라마를 기획·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K드라마 열풍으로 한국 콘텐츠 수출은 코로나19 여파에도 타 산업에 비해 타격이 작을 전망이다. 지난해 콘텐츠 수출액은 방탄소년단과 영화 ‘기생충’ 등의 선전에 힘입어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8.1% 증가한 103억9000만달러(약 12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해제될 조짐을 보이면서 올 하반기 드라마 제작사들의 수익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관영 CCTV는 한국 콘텐츠 방영을 재개했다. 음식 프로그램 ‘후이자츠판’에서 중국 셰프들이 나와 한국 요리를 소개했고, 지난달부턴 ‘엽기적인 그녀2’ ‘호우시절’ 등 방영을 중단했던 한·중 합작 영화를 다시 틀고 있다.

이기훈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한한령이 완화되면 한국 드라마도 판권 수출을 통해 최소 15편, 900억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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