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다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에 비해 변신에 능하다. 지역 상권의 특성을 꿰뚫어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점포 크기가 평균 100㎡ 정도로 변화에 부담도 적다. 한번 들여놨다가 안 팔리는 상품은 바로 진열대에서 빼기도 한다.
지난해 말 문을 연 CU 서초그린점은 편의점 특유의 ‘카멜레온 전략’을 실험하기 위한 본사 직영 매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변 상권에 맞춰졌다.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사는 지역인 만큼 친환경 콘셉트를 도입했고, 슈퍼마켓과 분식점을 결합한 공간도 마련했다.
이 매장은 CU의 첫 ‘그린스토어(친환경 매장)’다. 업계 최초로 환경부에서 녹색매장으로 지정받았다. 친환경 냉동고와 실외기를 들여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일반 매장보다 99% 줄였다. 태양광 충전과 단열유리 등으로 전기 사용량을 20%, 식당에서 쓰는 매장용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들여와 쓰레기양을 85% 줄였다.
소비자가 바로 체감하는 건 제품이다. CU 서초그린점은 매장 앞쪽에 ‘친환경 녹색제품’ 코너를 따로 마련했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지퍼백과 비닐장갑 등 생활용품 10여 가지를 판매한다.
주 타깃은 ‘가치소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CU 서초그린점은 매장 계산대 위에 큰 모니터를 달고 친환경 시설과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틀어놓는다. 소비자가 얼마나 친환경적인 점포에서 제품을 사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다.
전략은 먹혔다. CU가 지난 4월 친환경 녹색제품을 들여온 뒤 녹색제품의 월매출은 매달 전월 대비 평균 22% 늘고 있다. 주부들 사이에서 반응이 유독 뜨겁다. CU 관계자는 “친환경 봉투 가격은 100원으로 편의점에서 파는 일반 비닐봉지(20원)의 다섯 배지만 소비자들이 민원을 넣지 않고 사 간다”고 밝혔다.
CU 서초그린점 계산대 옆에는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즉석조리식품’ 코너가 있다. 치킨과 닭꼬치, 소떡소떡 등 바로 먹을 수 있는 메뉴만 약 20가지다. 분식집처럼 어묵 꼬치와 뜨끈한 국물도 있다. 2분기 즉석조리식품 매출은 전 분기보다 86.8%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다. 도시락과 샐러드 등 간편식품과 가정간편식(HMR) 상품 수도 일반 점포의 세 배를 넘는다.
식품을 마음 편히 먹도록 따로 분리한 휴게공간도 독특하다. 판매공간과 휴게공간 사이에 벽을 설치하고 8개의 테이블과 의자를 뒀다. 총 20명이 앉을 수 있어 편의점보다 식당에 가깝다. 10대 아이들은 곳곳에 모여 앉아 닭꼬치나 삼각김밥을 먹는다. 카페처럼 엄마와 어린아이가 함께 와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쥐고 책을 읽고, 엄마는 샌드위치를 먹기도 한다. CU에 따르면 일본의 패밀리마트도 이 공간을 벤치마킹했다.
저녁이 되면 CU 서초그린점은 ‘편의점 장보기’ 특화매장으로 변신한다. 급하게 식재료가 필요한 주부, 퇴근하는 직장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닌다. CU 서초그린점은 이들을 위해 과일과 식재료 전용 매대를 마련했다. 이 점포의 과일과 식재료 매출은 일반 점포 평균보다 각각 350.6%, 510.2% 높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