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시월은 다가오는데

입력 2020-08-09 18:24   수정 2020-08-10 00:20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와 중국의 개입이다. 두 전체주의 강대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큰 자원을 동원할 것이다. 워낙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뤄지는 공작들이라서 그 실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것들은 깊이 분열된 미국 사회에서 효과가 클 것이다.

두 나라가 트럼프를 돕는 것은 그가 전체주의 확산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자유주의 이념과 체제를 허물었다. 보호무역 정책을 내세웠고, 이민을 막았고, 우방들과의 연합을 금전적 수준에서 다뤘다. ‘미국 중심의 평화(Pax Americana)’를 지탱해온 국제적 기구와 관행들이 약화된 틈을 타서, 중국과 러시아는 빠르게 영향력을 늘렸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번 선거에서 거짓 정보를 퍼뜨려 트럼프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여겨진다. 트럼프가 러시아에서 사업을 할 때 저지른 잘못들을, 특히 난잡한 행동들을,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냥 묵히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러시아의 이익을 해치는 정책을 편 적이 없다.

중국도 트럼프를 잘 다룬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협상은 요란했지만, 미국이 얻은 것은 거의 없다. 트럼프는 티베트와 신장 원주민들의 처지에 무심했다. 이번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도 냉담했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형식적 응징으로 끝냈다. 트럼프의 기반인 미 중서부에서 산출된 농산물의 최대 시장이 중국이라는 사실이 트럼프의 중국 정책에 미묘한 영향을 미쳐온 것도 분명하다. 트럼프는 원래 인품과 식견이 낮아서, 교활하고 끈질긴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에선 버틸 수 없는 인물이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와 중국의 이해가 일치하므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마찰도 ‘연출’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 시민들의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빠르게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국 때리기’는 선거 운동의 필수적 부분이다. 그래서 두 나라가 그리 아프지 않은 곳들을 골라서 때린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영사관 폐쇄는 주목을 끌었지만 그리 아프지 않고 원상회복도 쉽다. 중국 영사관에서 비밀 서류를 태우다가 불이 나서 소방차들이 출동한 장면은 압권이다. ‘정보화 시대에 무슨 비밀 서류들이 그리 많아서 불까지 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음모론’이라는 얘기가 나오겠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음모론의 특질을 띠지 않는 얘기는 실질적 가치가 작다. 사회생활은 음모들로 이뤄진다. 정치판만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음모의 달인이고 역사는 성공한 음모들의 기록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다루는 가장 추상적인 학문인 게임이론은 아예 연합(coalition)을 이론적 틀로 삼는다.

중국이 트럼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다. 트럼프 백악관을 잘 아는 존 볼턴이 그것을 ‘10월의 이변(October surprise)’ 후보로 언급한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10월의 이변은 11월의 대통령 선거 바로 앞에 나와서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뜻한다. 후보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사건을 만들어내려 애쓰고, 상대가 그런 사건을 터뜨리는 것을 막으려 애쓴다.

중국이 바라면, 북한은 또 한 번의 ‘연출’에 기꺼이 응할 것이다. 실은 북한이 더 다급할 것이다. 선거판에서 열세인 트럼프는 그런 제안을 반가워할 것이다. 트럼프의 이기적 행태와 충동적 기질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뜻밖의 협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면서 김정은의 위상을 높였고 북한이 핵무기 체계를 발전시킬 시간을 벌어줬다. 이번엔 그는 더욱 약한 입장에서 협상해야 한다. 극적 이변을 만들어 내려면, 미국의 양보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미국이 자꾸 주한미군 감축을 언급하는 것이 불길하다.

어떤 협약이 나와도, 우리에게 좋은 내용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을 걱정해야 할 지도자가 대한민국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상회담이 열리면, 거기에 편승하려는 시도들만 무성하다.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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