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의 부품 조달 전략이 변하고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좀 떨어져도 ‘식구’란 이유로 계열사 제품을 채택하던 관행이 사라지고, 경쟁사 제품이라도 성능이 좋으면 납품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정’보다 ‘실리’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P는 데이터 송수신, 연산 등을 담당하는 스마트폰의 핵심 반도체다. 퀄컴은 세계 1위 AP 업체로 세계 3위권인 삼성전자의 경쟁사다. 2016~2017년 공정거래위원회의 퀄컴 조사 땐 삼성전자가 공정위 편을 들면서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5세대(5G) 이동통신이 보급된 국가엔 데이터 연산과 그래픽 처리 능력이 우세한 스냅드래곤을 장착하는 게 애플, 화웨이 등과의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무선사업부의 ‘실리주의’는 스마트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조달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폰에 삼성디스플레이 OLED 패널을 쓴다. 하지만 차기 스마트폰용 OLED 패널 공급사로는 중국 BOE도 고려하고 있다. BOE는 삼성전자에 삼성디스플레이 제품보다 30% 정도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 가성비가 상대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LG전자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BOE는 최근 LG전자로부터 대형 TV용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의 품질인증을 획득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패널도 LG디스플레이 외에 ‘제3의 공급사’ 제품을 쓰고 있다. ‘V60’ ‘벨벳’ 등 주력 스마트폰에 중국 업체의 OLED 패널을 넣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엔 LG전자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가 롤러블 스마트폰 개발 파트너로 LG디스플레이가 아니라 BOE를 지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가격보다 성능을 따지며 상대적으로 비싼 타사 제품을 쓰는 회사도 적지 않다. 갤럭시S20에 LG화학 배터리를 쓴 삼성전자, 벨벳 폰에 소니 제품 대신 삼성 4600만 화소 이미지센서를 넣은 LG전자가 그렇다.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무역분쟁, 코로나19 등으로 경영 상황이 나빠질수록 ‘실리’를 좇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