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션업계 최대 화두인 ‘스니커즈 리셀(resell·재판매)’ 시장 얘기다. 단순히 패션 상품으로 신발을 판매하는 게 아니다. 투자 개념으로 한정판 스니커즈를 산 뒤 비싸게 되파는 것으로, 이 리셀 시장을 선점하려는 물밑경쟁이 치열하다. 올해 3월 네이버가 자회사 스노우를 통해 ‘크림’이라는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달엔 무신사가 ‘솔드아웃’을 선보였고 최근엔 롯데백화점이 국내 최초 리셀 플랫폼 ‘아웃오브스탁’과 손잡겠다고 발표하면서 판이 커졌다. 모두가 신발만 바라보는, 그야말로 ‘스니커즈의 시대’다.
특히 거대 ‘유통공룡’ 롯데백화점이 뛰어들었다는 데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해외 브랜드 사업팀 안에 스니커즈 전담팀까지 꾸렸다. 올해 4월엔 MZ세대(1980~2000년대생인 밀레니얼과 그 이후 태어난 Z세대를 총칭)를 신규 소비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명품 스니커즈 편집숍 ‘스니커바’를 선보인 바 있다. 옷은 싼 걸 입어도 신발은 비싼 걸 신고 싶어하는 요즘 MZ세대의 소비를 겨냥한 것이다. 아웃오브스탁과 업무협약을 맺은 롯데백화점은 오는 7일엔 본점 명품관에 1122㎡(약 340평) 규모의 초대형 나이키 매장을 들여놓기로 했다. 나이키는 대형 핵심 매장에서만 한정판 스니커즈를 판매하기 때문에 롯데가 초대형 매장 유치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현재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가운에 나이키 핵심 매장이 들어서는 건 이곳이 처음이다. 그야말로 스니커즈 사업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무신사가 지난달 첫선을 보인 ‘솔드아웃’은 사전예약(앱 다운로드)으로만 15만명이 응모했다. 사전 예약을 하면 한정판 신발 ‘래플(무작위 추첨)’에 자동으로 응모하는 이벤트를 선보인 게 주효했다. 무신사 관계자는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얼마나 열정적인 매니아층을 회원으로 확보하는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리는 시장”이라며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기 때문에 정면승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익률이 높은 사업이라는 게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정가는 20만~40만원대지만 이 신발을 되팔 때 리셀가는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100배까지 치솟는다. 부르는 게 값인 신발도 많다. 사용하기 위해 산다기보단 투자용으로 수집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야말로 요즘 시대의 새로운 신발 재테크, ‘슈테크’라 불릴 만하다.
이렇게 판매된 한정판 신발은 실제로 사람들이 신기도 하지만 대부분 리셀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올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지드래곤과 나이키 협업 신발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가 대표적이다. 색상에 따라 300만원에서 2000만원대에 거래되기도 했다. 정가는 21만9000원이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나이키 에어조던6 트래비스 스콧’은 30만9000원짜리였지만 출시 직후 리셀시장에서 140만~180만원대에 거래됐다. 수익률로만 따지면 353~483%에 달한다. 짧은 기간에 주식, 부동산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볼 수 있는 ‘신종 재테크’인 셈이다.
해외에선 이미 고가로 거래되는 스니커즈 리셀 시장이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2011년에 출시됐던 플루토늄 케이스의 ‘나이키 맥’ 신발은 179달러의 정가를 비웃듯이 9900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수익률 5430%에 달한다. 구하기 어려운 희소성 측면에서 나이키와 칸예 웨스트가 협업한 ‘에어 이지 2 레드 옥토버’ 신발은 정가보다 1620% 비싼 2900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꼭 새 신발만 비싸게 팔리는 건 아니다. 나이키가 1972년 뮌헨올림픽에 출전하는 미국 육상 국가대표 선수를 위해 단 열두 켤레만 제작했던 ‘나이키 와플 레이싱 플랫 문 슈’는 지난해 7월 소더비에서 43만7000달러(약 5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아주 낡아서 신을 수 없는 신발이지만 투자가치 측면에서 비싸게 팔린 것이다.
엑스엑스블루는 모회사인 서울옥션의 경매 노하우를 적용했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원하는 가격들의 적정가격을 매겨 투명하게 사이트에 실거래가를 공개하고 있다. 매니아층을 더 늘리기 위해 지난달까지 ‘나이키 덩크 20주년 기념 전시회’도 열었다. 2005년 출시됐던 200달러짜리 ‘나이키 SB 덩크 로우 스테이플 NYC 피죤’ 신발을 전시했는데, 이 신발의 현재 리셀가는 3700만원에 달한다.
스니커즈 매니아들의 축제로 꼽히는 ‘스니커하우스’를 운영하는 스택하우스도 최근 무신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등 활발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7년 12월 1회 행사를 열었던 스니커하우스에는 300여명이 참여했고, 2018년 2회와 3회 땐 1000명, 3000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지난해 7월 열린 4회엔 약 5000명이 몰렸다. 그만큼 스니커즈 리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오프라인 행사장에선 리셀러들이 제품을 팔기도 하고 고가의 스니커즈를 전시도 한다. 전문가들이 신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포럼 같은 이벤트도 있다. 단순히 신발을 사고파는 장터를 넘어서는 슈즈매니아들의 축제인 셈이다.
이미 해외에선 스니커즈 축제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컴플렉스콘’과 ‘스니커콘’, 유럽의 ‘스니커네스’와 말레이시아의 ‘스니커라’, 일본의 ‘아트모스 콘’과 중국의 ‘요후드’ 등이 대표적이다.
간호섭 홍익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교수(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장)는 “차세대 소비자인 MZ세대의 쇼핑 트렌드를 보여주는 단면이 바로 스니커즈 리셀 열풍”이라며 “남과 다른 한정판 제품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누가 더 정교한 시스템으로 사로잡는지가 플랫폼 사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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