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닮아가는 부동산 정책…'대네수엘라' 현실되나

입력 2020-08-11 15:32   수정 2020-08-11 16:17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규제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취득·보유·거래세 인상과 전세대출 규제 등에 이어 부동산 거래를 감시하는 별도의 기구 설치를 시사하는 등 반(反)시장적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정부 부동산 정책이 포퓰리즘과 과도한 규제로 부동산 가격 폭등을 야기한 베네수엘라를 닮아간다"는 지적이 공감을 얻고 있다.

11일 정부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 한국 부동산 정책을 베네수엘라의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책과 연결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부동산 규제 대부분이 10여년 전 베네수엘라에서 잇따라 도입해 실패한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대네수엘라' 현실화되나
한-베네수엘라 경제협력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는 2003년부터 9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에도 임대감사국이 면적에 따른 임대료를 정해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최근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나 추진중인 표준임대료제와 비슷하다고 평가받는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1년엔 임차인이 새로운 주택을 구하기 전 퇴거를 강제하지 못하게 하는 임의적퇴거금지법을 도입했다. 최근 전세가격 폭등을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되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각종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 등에선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를 합쳐 '대네수엘라'가 되겠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부동산 감독 기구 신설을 시사하면서 자조는 현실화에 대한 우려로 바뀌는 모습이다. 부동산 감독 기구가 2011년 베네수엘라에 설립된 공정가격감독원(SUNDDE)과 성격이 유사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공정가격감독원은 현재 주로 생필품 등 유통되는 공산품의 가격을 제한하는 형태로 운영되지만 필요에 따라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다섯 채의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이 처분을 거부할 경우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를 수용하고 소유주에게는 공정가격으로 보상해 줄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부동산 가격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도입을 시사한 부동산 감독 기구도 이같은 가격 규제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구의 실체에 대해선 지켜봐야겠지만 시장 가격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부동산 시장을 더 위축시키고, 양질의 부동산 공급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빈곤층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정책적 유사점은 이 외에도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다. 2010년부터 민간주택사업에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6·17 대책의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등 규제 강화와 대응한다는 평가다. 2011년 건설중인 주택은 정부 허가 후 분양 또는 매매할 수 있게한 부동산사기방지법을 도입한 것과 분양가를 물가에 연동되지 못하게 한 조치는 노무현 정부 때 부활한 분양가 상한제, 최근 확대되고 있는 분양권 전매제한 등을 떠올리게 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한국의 경제 상황이 베네수엘라와는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는 원유를 기반으로한 자원 경제의 성격이 강한 반면 한국은 자원이 없고 제조업과 수출 중심 경제다. 우리가 주택 소유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과 달리 베네수엘라는 국토가 넓고 인구가 적어 주택을 소유하려는 사람이 적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규제의 방향이 유사한만큼 그 결과는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시장적 규제의 결과로 베네수엘라의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보고서는 2013년을 기준으로 "매달 부동산 가격이 16%씩 오르고 있다"며 "극빈층을 돕고자 정책을 실현했지만 주택을 매입할 여건이 되지 않는 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임대료를 강제로 정한 조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2배 이상 웃돈이 붙는 '임대료 암시장'이 형성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개인간 거래 들여다보는 곳 없어
베네수엘라 외에도 일부 국가에서 정부가 부동산 거래에 상당 부분 개입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은 사회주의 국가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부동산 거래만을 특정해 감독하거나 거래 허가제를 도입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베트남은 토지는 국유화 상태여서 거래가 불가능하지만 건물은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중국도 토지가 국유화 상태지만 토지 사용권 개념을 도입해 거래를 허용한다. 일반 부동산 거래를 정부가 허가하는 절차는 없다.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고 정부의 개입이 많아지면 결국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주택과 관련된 전 과정을 주택개발청이 직접 관여한다. 싱가포르 주택의 80% 이상을 국유화해 환매조건부 분양제도에 따라 분양한다. 주택을 분양가에 매입할 수 있지만 이사를 갈 경우엔 매입가격에 되팔아야한다. 하지만 싱가포르식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기존 주택의 국유화 과정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개인 소유 주택을 강제 수용하는 형태로 이같은 제도를 구축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개입으로 사유재산권이 침해되고 부동산 가격은 더 뛰는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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