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으로 포장한 이들 정책이 실제로는 고용이 완벽하게 보장된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화된 근로자들 좋은 일만 시킨 ‘퇴행’임을 조리 있게 설명해냈다. 보호해주겠다던 취약 중소기업과 미숙련 근로자,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에게는 날벼락을 안겼으니 ‘정책의 배신’으로 불러 마땅하다는 내용이다. “대한민국을 병들게 했다”는 표현까지 동원한 이들 정책을 정부와 여당이 강행한 것은 3년 전 치른 대통령선거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급 1만원 달성’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일자리 50만 개 창출’ 등을 경제분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윤 의원은 정부·여당이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이런 공약을 내걸고서는 “약속했으니 이행하겠다”며 밀어붙인 것을 매섭게 비판했다. “경제에 주는 충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기적 목표만 밀어붙이는 ‘완장 찬 순사’ 같은 태도” “어떤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개의치 않고 근로시간을 줄이겠다는 것이 유일한 정책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등 신랄한 대목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갸웃거렸고, 책을 덮고 난 뒤에는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좌파 기득권 수호에 매몰된 대한민국 경제 사회 정책의 비밀’을 부제(副題) 삼아 이 책이 공격한 상당수 정책에 그의 소속당인 미래통합당(전신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포함)이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2017년 5월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뿐 아니라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내건 공약이었다. 홍 후보는 그나마 2022년을 달성 시기로 제시했지만, 유 후보는 문 대통령과 똑같이 ‘2020년까지’를 시한으로 못 박았다.
윤 의원이 ‘경제를 악화시킨 주범’으로 규정한 주 52시간제가 확정된 과정은 더 기가 막힌다. 2018년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여당 단독작품이 아니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소속의원들이 전원 합의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확정했다. 두 야당의 환노위 간사들은 “고심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근로자의 삶 향상을 위해 한걸음 전진한 의미가 있다”는 말까지 했다.
‘고심’ ‘최선’ ‘향상’ ‘전진’ 따위의 말이 허구요, 기만이었음은 정부와 국회가 제도 시행 직후부터 쏟아진 부작용을 땜질하느라 진땀을 흘리면서 금세 드러났다. 개별 기업과 근로자들의 다양한 사업 특성과 욕구를 무시한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근무시간 제한이 중소기업과 종사자들에게 가한 충격은 특히 컸다. 법안이 얼마나 날림이었고 무모했는지는 여당 의원을 겸직하고 있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고백으로도 확인된다. 박 장관은 작년 11월 기자단 브리핑에서 “주 52시간 제도는 조금 더 예외 규정을 뒀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경직됐다. 나도 (찬성) 투표를 했는데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일을 마냥 추궁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모호한 정체성 속에서 여당 들러리나 서는 정당에 국민이 나라를 믿고 맡길 리 없다. 유권자들이 여당이 아닌 통합당을 심판한 지난 총선 결과는 그걸 일깨워준다. 최근 대수술에 나선 통합당이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 ‘내 삶이 자유로운 나라’ 등을 새 정강(政綱)의 주제로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먼저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하다. “몰라서일까, 알면서도일까. 잘못된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재앙을 불러올 것인가.” 《정책의 배신》이 제기한 화두(話頭)를 통합당 구성원들이 먼저 새기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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