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앙숙인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국교 수립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가시적인 외교 성과를 챙길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3주 안에 이스라엘과 UAE 지도자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합의서에 서명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두 나라의 수교에 대해 “엄청난 돌파구”라고 평가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합병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스라엘과 UAE는 곧 대사를 교환하고 투자, 관광 등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올해 UAE와 수교하면 아랍 국가 중에선 이집트(1980년) 요르단(1994년)에 이어 26년 만에 국교를 맺는 것이다. UAE는 1971년 건국 이후 49년 만에 이스라엘과 수교하게 됐다.
이스라엘과 UAE의 수교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이스라엘, UAE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이란을 최대 위협으로 보고 있고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UAE는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경계해 왔다.
중동 문제, 팔레스타인서 '이란과의 싸움'으로 재편
UAE와 이스라엘, 그리고 이들을 중재한 미국은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동맹국으로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를 주기적으로 공격해 시리아 내 이란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있다. UAE를 포함한 걸프 지역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은 시아파인 이란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미국의 동맹인 UAE도 이란의 영향력 증대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우려하며 이스라엘과 협력해왔다. 미국은 2년 전 대이란 제재를 재개하는 등 불편한 사이를 이어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동 문제를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란과의 싸움으로 재편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행보가 각국 정상에게는 정치적 돌파구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결사(dealmaker)를 자처했지만 이란 및 북한 문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왜 노벨평화상 후보가 돼야 하는지 증명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명명된 이번 협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로, 유대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도 깊이 관여했다.
뇌물수수 등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기회라는 평가다. 그는 평소에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관계 개선을 본인의 치적으로 내세워온 인물이다.
서안지구 문제의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이자 수치스러운 선언”이라고 반발했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UAE 주재 대사를 소환해 항의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이 배신당했다고 비난했다. 이번 3국 연합으로 위기에 놓인 이란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의회 특별보좌관은 “UAE의 실수로 아랍에 시오니즘이 불타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아랍 국가들도 UAE처럼 이스라엘과 수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동 국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단 아랍연맹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서 손을 떼고 팔레스타인을 인정해야 아랍 국가들과 수교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이고운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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