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따르면 홍수·태풍 등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으로 원칙적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항은 아니다. 1998년 여름, 6시간 동안 34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며 중랑천 상류 일대가 범람했다. 서울 노원구 주민 100여명은 서울시와 국가를 상대로 재산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1000년에 한 번 올만한, 국내 강우 관측 사상 최댓값으로 불가항력적 재해로 봐야 한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태풍으로 인해 정전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예방·안전 의무 등을 게을리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20년만의 폭우로 기록된 2011년 ‘우면산 사태’가 대표적이다.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데, 대법원은 당시 서초구가 제때 경보를 발령하지 않아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국가배상법에 따라 도로나 하천, 기타 영조물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어 손해가 발생한 경우 국가나 지자체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한 지자체에서 호우로 둑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을 때, 법원은 해당 지자체가 제방 관리 기준이 되는 하천정비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배상 판결을 했다. 법무법인 주원의 김진우 변호사는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배수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빗물펌프장 수문을 적시에 닫지 못하는 등 관리 소홀 문제가 있었다면 국가배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거센 빗줄기에 도로의 아스팔트 곳곳이 패여 자동차가 손상되는 경우도 지자체의 평소 도로관리 정도에 따라 국가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즉 같은 자연재해를 겪었더라도 지자체의 대응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사고의 원인이 ‘천재’가 아니라 ‘인재(人災)’였다는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에 더해 지자체가 책임을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므로 실제 배상을 받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불가항력과 본인(원고) 관리책임 등을 함께 고려해 일부승소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며 “손해액 100%를 국가로부터 배상받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덧붙여 기상청이 기상예보를 정확히 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 만으론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힘들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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