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관법 처벌 땐 줄폐업"…中企 다 죽고 나서 땜질할 건가

입력 2020-08-16 18:11   수정 2020-08-17 00:48

코로나19 사태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중소기업계에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악재가 겹쳤다.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4월부터 9월 말까지 유예된 화관법 위반 기업 처벌이 10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 초 전면 시행에 들어간 화관법은 유해 화학물질 취급 안전기준을 과거에 비해 크게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2015년 1월부터 5년이란 유예기간을 준 만큼 더 이상 시행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5년 113건이었던 화학사고가 지난해 57건으로 줄어드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결과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 같은 환경부 주장은 미증유의 경제위기로 생사의 기로에 선 중소기업들엔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한경 보도(8월 15일자 A1, 3면)에서 잘 드러나듯 코로나 사태로 공장 임차료도 내지 못하고,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가까스로 연명하는 중소기업이 수두룩한 실정이다. 표면처리(도금) 업계의 경우 월 매출이 수천만원에 불과한 상당수 영세업체가 법 기준에 맞는 폐수장 설치비용에만 수억원을 들여야 할 판이다.

중소기업인들은 “불황으로 망하든, 단속으로 망하든 선택지는 결국 폐업뿐”이라며 자포자기 상태다. 일선 공단에서는 벌써부터 관련 업체들의 줄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환경규제를 벤치마킹한 유럽연합(EU)도 10여 년에 걸친 논의 끝에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도입했지만 막상 시행 후 관련 기업이 줄줄이 미국, 인도 등으로 팔려나갔고, 폐업이나 도산한 사례도 적지 않다.

실상이 이런데 환경부는 예정대로 단속을 실시해 법을 어길 경우 개선명령을 내리고, 이행상황을 봐 처벌까지 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화관법 적용을 받는 1만4000여 곳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는 업종은 도금과 염료·안료업종 등이다. 문제는 이들이 충격을 받으면 반도체, 자동차 같은 주력 제조업까지 연쇄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일단 질러놓고 문제가 생기면 보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유럽, 일본보다 훨씬 강한 최고 수준의 화학 규제를 영세 중소기업이 지키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기업들이 준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화관법을 개정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처럼 땜질만 하다 후회할 일을 만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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