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숫자로 본 2020 증시

입력 2020-08-16 17:37   수정 2020-08-17 01:40

과거 한국 증시의 주인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내렸다. 1년 전만 해도 그랬다. 작년 1월부터 8월 13일까지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5조254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개인과 기관은 각각 1조4120억원, 2조356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작년 8월 당시 코스피지수는 1900대였다.

1년 만에 한국 증시는 모든 게 바뀌었다. 외국인 대신 ‘동학개미운동’으로 시작한 개인들이 주인이 됐다. 그들은 47조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47조원을 주식 사는 데 쓰고도 투자 대기자금은 51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지수는 2400선으로 뛰어올랐다. 올해 증시를 밀어올린 지표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예탁금 올 들어 두 배로
지난 14일 기준 고객예탁금은 51조1468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연초(27조3932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개인들이 월평균 6조원어치를 순매수하며 돈을 쏟아부었지만 예탁금은 계속 늘고 있다. 주식에 대한 관심, 시장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 자금을 근거로 주가가 조정을 받더라도 그 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가가 떨어지면 개인들이 받쳐 줄 것이란 얘기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동향분석실 선임연구위원은 “개인 자금이 증시로 몰려가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며 한국은 그중에도 개인들의 힘이 특히 강하다”며 “코스닥은 개인 투자자 비중이 80~9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경제활동인구 넘어선 주식계좌
개미들이 주인이 됐다는 것은 주식 계좌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연초 2936만 개이던 계좌 수가 16일 3274만 개로 늘었다. 경제활동인구(2824만 명)를 훌쩍 뛰어넘는다. 직장인의 전유물이었던 주식이 전 국민의 재테크 수단이 됐다는 평가다. 아이돌 얘기를 할 것 같은 젊은이들이 주식 얘기를 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 됐고, 컴퓨터에 서툰 노년층은 지점을 방문해 계좌 개설에 나서고 있다.
주식형 펀드 17조원 순유출
증시로 흘러온 돈의 출처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주식형 펀드다. 올 들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만 17조5826억원이 빠져나갔다. 펀드 매니저가 종목을 선택하는 액티브 주식형 펀드에서는 올해만 2조8732억원이 순유출됐다. 개인들이 펀드에서 돈을 빼 직접 투자에 나서고 있다. “수익률이 낮을 때는 낮아서 빼가고, 높을 때는 차익을 실현한다고 돈을 뺀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 결과는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추락이다. 2008년 18개에 달했던 설정액 1조원이 넘는 액티브 주식형 펀드는 ‘신영밸류고배당’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CMA 잔액도 사상 최대
또 다른 대기자금의 성격을 갖고 있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과 계좌 수도 사상 최대다. 16일 기준 CMA 계좌 수는 1845만 개다. 연초 1606만 개 대비 15% 증가했다. CMA 잔액도 58조원까지 증가했다. 이전 최고치는 55조8113억원을 기록한 2018년 1월이었다. 초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CMA로 몰렸다는 분석이다. CMA는 증권사가 고객의 자금을 어음,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금을 돌려주는 수시입출금 계좌다.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지급해 단기 부동자금의 창구로 꼽힌다. CMA 잔액이 증시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CMA를 통해 바로 주식에 투자할 수 있어 ‘파킹계좌’로도 불린다.
‘빚투’는 16조원 육박
우려스러운 지표도 있다. 신용잔액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빚투(빚내고 투자)’에 나선 개인이 많다는 얘기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신용거래융자는 16일 15조7940억원을 기록했다. 연초(9조2072억원) 대비 72% 늘었다. 개인들이 시장을 낙관하고 있다는 근거다.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때 돈을 빌려 투자하는 사람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혁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 시장은 신용융자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고객예탁금도 늘고 있어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의명/전범진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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