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5년차 배우 장영남의 꿈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입력 2020-08-19 08:34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자신의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만으로 극의 흐름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배우는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게 맞는지 불안했다"면서 겸손함을 보였다. 올해로 연기 경력 25년차, 장영남의 이야기다.

배우 장영남의 연기력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 박영규, 손병호, 유해진, 박희순 등을 배출하며 '배우 사관학교'라고 불린 극단 목화를 거쳐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흡입력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해 개봉한 '증인'에서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딸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던 장영남은 지난 9일 종영한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딸을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살인까지 저지른 냉혈한으로 분해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했다.

"MBC '해를 품은 달' 전화 인터뷰 이후 8년 만에 드라마로 인터뷰를 한다"는 장영남은 "박행자를 연기하는 내내 불안했는데, 시청자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 많았죠"
극 초반 박행자는 환자만을 위해 사는 간호사로 그려졌다. 결혼도 않고 홀로 병원을 지키면서 다른 원장에게도 일침을 하는 모습은 '백의의 천사' 그 자체였다. 그랬기에 종영 2회를 남겨 놓고 공개된, 박행자의 실체는 도희재였다는 사실은 충격이 컸다.

드라마틱한 반전이였지만 연기를 하는 배우 입장에선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박행자의 반전은 장영남 역시 캐스팅을 확정지을 때까지 몰랐던 부분이었다고. 장영남은 "첫 촬영을 하러 갔더니 '박행자가 실은 도희재'라는 말을 들었다"며 "너무 신나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이 간극을 풀어가야 할 지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박행자는 평범한 일반인이잖아요. 간호사, 백의의 천사라고도 하는. 하지만 사실은 악마잖아요. 천사로 위장하고 있는 악마. 그게 너무 떨리더라구요. 이렇게 연기하는 게 맞나. 나중에 도희재라는 캐릭터를 잘 설명할 수 있나 싶었죠."
"연기하는 이유는 재미, 연기가 제일 즐거워"
박행자의 반전에 대해 모르는 상황에서도 '사이코지만 괜찮아' 출연을 결정한 건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대본" 때문이었다. 여기에 SBS '질투의 화신', tvN '남자친구' 등을 통해 섬세한 감정선과 세심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박신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다는 것도 장영남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본 속 이야기들이 독특하고 좋았어요. 정말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괜찮은 병원이라는 설정도 너무 신신하지 않나요? 이런 이야기라면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재밌는 대본, 즐거운 촬영 현장에서 장영남은 "연기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박신우 감독과 처음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디렉션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며 "예전엔 연기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해주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이를 먹을 수록 그런 사람들이 없다"면서 고마웠던 현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완벽한 연기는 없잖아요. 늘 작품에 따라 변해야 하는데, 연기하는 제가 모르고 넘어가는 부분들을 보는 사람이 포착해서 알려줄 수 있어요. 새로운 걸 배우고 느끼는 그때 얻는 에너지가 엄청나죠."
"사실, 정체기를 겪었어요"

이어 충격적인 고백이 나왔다. 장영남이 출산 이후 "내가 하는 이 일이 맞나", "이 연기가 맞나"라는 고민에 짖눌려 슬럼프를 겪었다는 것. 올해에만 SBS '아무도 모른다', MBC '그 남자의 기억법'에 이어 '사이코지만 괜찮아'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왔던 장영남이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커서 번아웃이 온 거 같아요. 나는 연기만 보고 좋아서 했는데, '내가 제대로 못했나'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내 스스로를 , 내 연기를 너무 의심했던 것 같아요. 갈증과 의심이 심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내 연기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사 하나를 해도 자신이 없고, 그때 슬럼프에 빠졌죠."

"슬럼프를 극복했냐"는 질문에 장영남은 "지금도 그 상태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통해 응원과 칭찬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연기할 때 용기가 난다"며 " 원래 성격은 겁도 많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못하는데, 연기할 땐 용감하게 도전한다. 그런 순간들이 즐겁다"며 앞으로도 계속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가족은 연기와 함께 내 삶의 일부"
수많은 작품에서 엄마 역할을 하면서 많은 모습의 엄마를 경험한 장영남이었다. 그럼에도 진짜 엄마가 되고, 육아와 연기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특히 촬영장에서 밤을 새고, 집에 들어갔을 때 아이가 깨 있으면 잠에 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일도 빈번했다"며 아이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화내고 나면 '엄마가 미안했어'라고 사과도 곧바로 한다"며 "다행히 아이도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엄마가 최고'라고 해준다"면서 휴대전화 메인 화면마저 아이 얼굴로 해놓는 '아들 바보'의 모습을 보였다.

"내가 책임지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현장에 나가기 전에 대본을 외우는 것이 배우 장영남의 일이고, 그러면서도 아이를 돌보고 밥 차려주고 하는 것도 장영남의 일이죠. 사실 좀 빡빡하지만 그래도 어떡해요. 내 자식이잖아요."


장덕진 기자 ddra02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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