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으로 밀려나온 色들의 눈물…구상희 개인전 '화면의 경계에서'

입력 2020-08-18 17:02   수정 2020-08-19 04:42


2018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스콥 바젤아트페어에서였다. 화가 구상희 씨(48)는 설움을 톡톡히 당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류 작가들과 달리 한쪽 구석에 걸린 자신의 그림들을 보며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다고 했다.

작가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의문마저 들었던 그때, 문득 자신처럼 소외된 공간에 생각이 미쳤다. 캔버스의 구석과 액자의 모서리, 주변…. 왜 그림은 캔버스를 둘러싼 틀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아파서 낑낑대던 그는 바로 목공소로 달려갔다. 육면체 나무상자를 주문해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도 색을 입히고 작품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지난해 여름 홍익대 미술대학원 졸업전에도 원래 예정했던 작품 대신 이렇게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구씨가 그림을 둘러싼 틀을 깨고 소외됐던 공간을 살려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화면의 경계에서’를 통해서다. 캔버스에 해당하는 정면에 평면 작업을 하고 측면에도 무지개처럼 색띠를 입힌 35점을 내놓았다.

구씨의 작업은 크게 정면 작업과 측면 작업의 두 단계로 이뤄진다.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나무상자를 제작해 모델링패이스트(아크릴 보조제)와 젯소를 상자의 전면과 측면에 순차적으로 바른다. 전면에는 미술 기사를 다룬 신문과 잡지, 화보 등의 이미지를 붙인 뒤 지우고 긁고 찢어서 형태를 허문다. 기사의 텍스트를 뒤집거나 거꾸로 붙이기도 한다.

상자의 옆면에는 물감을 섞은 레진을 위에서부터 흘러내리게 해 색띠를 만든다. 흘러내린 각각의 색은 프레임의 가장자리를 지나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주목받는 공간을 차지하지 못한 채 주변으로 밀려난 색들의 눈물 같기도 하다.

구씨는 전면부 작업을 통해 현대미술 시장의 부조리에 저항한다. 주목받는 작가들만 다루는 신문·잡지의 기사들을 덮고, 문지르고, 지움으로써 매체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기사의 일부를 남겨둠으로써 부인할 수 없는 양가 감정을 드러낸다. “나도 주류에 편입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측면의 색띠들은 중심지향적인 우리 사회의 모순을 주변부의 아름다움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다. 정육면체와 직육면체인 구씨의 작품은 각각이 하나의 작품인 동시에 여럿이 모여서도 설치 작품이 된다. 계단과 벽의 모퉁이를 끼고 양옆, 위아래로 펼쳐지기도 하고 막대 모양의 직육면체가 벽면을 다채롭게 장식한다. 설치를 위한 변주와 변용의 가능성이 엄청나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프레임(틀·액자)은 서구 미술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정면성의 법칙’을 강조하고 전시장의 벽과 회화 공간을 분리하는 장치인데 구씨의 작업에서는 프레임이 그림을 완성하는 주체가 된다”고 평가했다. 프레임에 물감이 칠해지고 작품 내부로 개입한 결과 중심과 주변, 작품과 틀,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져서다. 구씨가 작품의 제목을 ‘Trace of Sans(부재의 흔적)’라고 단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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