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순교 성인 103位 초상화 한자리에

입력 2020-08-19 17:08   수정 2020-08-20 09:40


1784년 이승훈이 최초로 세례를 받으면서 평신도에 의한 자생교회로 출발한 한국 천주교는 이후 한 세기 동안 혹독한 박해에 시달렸다. 특히 4대 박해로 꼽히는 신유(1801년)·기해(1839년)·병오(1846년)·병인박해(1866년)는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이하 주교회의)에 따르면 현재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순교자만 1800여 명. 무명의 순교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됐던 103위(位)의 초상화가 시성(諡聖) 36년 만에 처음으로 완성돼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가 다음달 4~27일 서울 명동성당 입구의 갤러리 1898에서 여는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 ‘피어라, 신앙의 꽃’을 통해서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교회 역사상 시성 기록이 남아 있는 성인은 1만 명에 달한다. 지금도 교황청 시성성의 심사와 교황의 교령 반포를 통해 새로운 성인이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천주교처럼 순교자로만 성인을 탄생시킨 것은 유례가 없다.

그런데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 성인의 초상화를 이제야 모두 갖추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시성 당시 성인들의 개별 초상화와 103위 성인화를 사전 제작해야 했지만 사상 첫 시성식이었던 데다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까지 겹쳐 개별 초상화를 마련하지 못했다. 시성 전인 1977년 문학진 화백이 그린 103위 성인화(혜화동성당 소장)도 제작 당시엔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를 그린 것이어서 성인의 상징인 후광(後光)이 없다.

이후 김대건 신부,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등 40여 위의 초상화가 제작됐으나 김 신부의 아버지인 김제준 등 나머지 성인들은 개별 초상화가 없는 상태였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는 2017년부터 103위 성인의 개별 초상화 제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등이 초상화 제작을 이끌었다. 초상화 제작에는 가톨릭 신자 미술인을 대상으로 공모해 선정된 작가 63명이 참여해 지난 6월 68위의 성인화를 완성했다. 또 기존에 두세 명이 함께 그려져 있던 9위의 성인을 개별 초상화로 분리해 최종적으로 77위의 초상화 제작을 모두 끝냈다.

이번 전시는 그 결실이다. 3년 반에 걸쳐 새로 제작한 77위의 초상화에다 전국의 성당과 성지에 분산돼 있던 기존의 성인화까지 빌려와 한자리에 모았다. 이 중에는 초기 한국천주교를 이끌다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 10명도 포함돼 있다.

성인화 제작 및 전시 총괄기획을 맡은 주교회의 문예위 총무 겸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신부는 “성인화는 일반 초상화와 달리 인물의 성스러움이 은은히 느껴져야 하고, 대부분 순교자가 관련 사진이나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실물을 닮게 표현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인화를 보면서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성인 초상화를 박해 시기에 따른 순교 순서대로 배치하되 가족이나 친척 관계인 성인들은 함께 배치해 이해를 도울 방침이다. 순교성인 103위 절반가량이 부부·형제·부모 등 가족관계라는 설명이다. 초상화와 함께 성인들의 삶과 행적도 소개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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