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품으로

입력 2020-08-20 15:22   수정 2020-08-20 15:39

국보 제180호 '김정희필 세한도(歲寒圖)'를 국가가 소유하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일 "세한도 소장자인 손창근 선생(91)이 지난 1월 말 박물관에 전화를 걸어 기증 의사를 전해왔다"며 "현재 기증과 관련한 제반 절차를 진행 중이며, 공식적으로 절차가 마무리되면 세한도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 모두가 세한도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오는 11월 세한도 공개 특별전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창근 선생의 소장품 기증은 이번이 두 번째다. 선생은 개성 출신 실업가였던 부친 손세기 선생(1903∼1983)과 자신이 대를 이어 모은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203건 305점을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연구·전시를 위해 기탁했다. 이중 세한도를 뺀 304점을 2018년 기증했고, 이번에 세한도까지 기증함으로써 기탁한 문화재 모두를 국가에 내놓게 됐다.

컬렉션에는 1447년 편찬한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의 난초 그림인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17세기 명필 오준과 조문수가 쓴 서예 작품, 겸재 정선의 '북원수회도(北園壽會圖)'가 수록된 화첩 등이 포함돼 있다.

선생은 세한도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심사숙고 끝에 내어놓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짧은 이 한 마디에 세한도에 대한 애정과 기증을 결심하기까지의 고뇌가 담겨 있다. 금전으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이기 때문이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의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는 문인화의 걸작이다. 1844년 59세의 추사가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그린 작품으로, 자신이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달픔과 메마름을 건조한 먹과 거친 필선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서화(書畵) 일치의 경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세한도는 1840년부터 9년간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의리를 지켜준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린 작품이다. 유배 중인 스승을 위해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새롭게 들여온 중국의 문물 자료를 보내줬고, 이에 대한 답례로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선물한 것이 세한도이다. 세한도 오른쪽 아래에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이라는 인장을 찍어둔 이유다.

세한도는 소박한 집 한 채의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 있는 겨울 풍경이다. '세한'이란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유배지에서도 선비의 올곧은 정신을 굽히지 않는 자신과, 곤궁한 처지의 스승을 외면하지 않은 제자를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를 청나라 문인 16명에게 보여주고 아낌없는 찬사의 글을 받아 남겼다. 근현대에는 오세창, 정인보 등 여러 사람이 글을 남겨 작품의 총 길이가 10m를 넘는다. 세한도를 통해 그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손 선생은 소장품 외에도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 1억원을 쾌척했고, 2012년에는 자비로 가꾼 경기도 용인의 산림 660만㎡를 정부에 기부했다. 2017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0억원 상당의 건물과 1억원을 전하기도 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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