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팹(Fab), 2차전지 드라이룸, 음압병동…. 이 시설들의 공통 키워드는 ‘먼지’다. 제품 생산이나 환자 진료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클린룸’이라는 청정 공간을 따로 구축해야 한다. 클린룸 설비 업체들은 최근 ‘귀하신 몸’이 됐다. 반도체와 배터리 관련 시설투자가 늘면서 삼성, SK, LG 등 주요 그룹 계열사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음압병동 수요가 늘어난 것도 클린룸 업체들의 몸값이 올라간 요인 중 하나다.
클린룸 업계의 실적 개선 배경엔 반도체 업체들의 증설 경쟁이 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원투펀치’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증설에 나서면서 클린룸 설치 주문도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엔 중국 업체들의 클린룸 설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수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클린룸 설비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클린룸은 반도체 품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 시설로 꼽힌다. 파티클(미세먼지) 한 알만 제품에 내려앉아도 애써 생산한 반도체가 불량품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최근 도입된 극자외선(EUV) 노광공정에 들어가는 클린룸엔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다. 1세제곱피트(0.02㎥) 크기의 공간에 미세먼지가 100개 이하여야 한다. 기존 클린룸보다 미세먼지 기준이 10배가량 높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반도체 업체들이 ‘단골’이라면 배터리 업체는 ‘새 손님’이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생산라인에 클린룸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배터리 업체는 클린룸 대신 ‘드라이룸’이란 용어를 쓴다. 미세먼지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은 같지만 정밀한 습도 제어 설비가 추가된다. 배터리는 습도에 민감해 생산공정의 습도가 기준치를 넘어서면 제품이 폭발할 수 있다.
드라이룸 주문은 해외에서 나온다. 배터리 업체들이 해외 완성차 공장 옆에 2차전지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어서다. 신성이엔지는 올해 중국 법인 매출에서 드라이룸이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겨 56%에 달했다고 밝혔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올해 수주 물량이 모두 드라이룸에서 나왔다. LG화학 폴란드 공장, 삼성SDI 헝가리 공장 등이 드라이룸을 만들어줄 것을 주문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말레이시아 동박 공장, 두산솔루션의 헝가리 동박 공장에도 드라이룸이 들어간다.
시장에선 클린룸 업계의 호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내년 전 세계 반도체 시설 투자가 올해보다 24% 늘어난 677억달러(약 81조원)에 달해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2차전지 설비 투자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LG화학과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은 2024년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올해의 세 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우려도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신성이엔지 관계자는 “반도체와 2차전지는 클린룸 설비가 조금만 미흡해도 품질이 떨어지는 예민한 제품”이라며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 업체에 맡기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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