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VC)들이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PEF)들과 손 잡고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초기 창업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VC가 기업 생명 주기의 정반대에 서 있는 구조조정 기업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인베스트먼트는 부실채권(NPL)을 중심으로 오랜 구조조정 투자 경력을 갖춘 화인자산운용과 함께 1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 결성을 앞두고 있다. 지난 달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투자하는 한국성장금융 2차 기업구조혁신펀드 위탁운용사에 선정돼 500억원을 출자 받은 이들은 나머지 500억원을 자체 계열사 등을 통해 조달해 단기간에 펀딩을 완료했다.
기업구조혁신펀드에 VC가 참여한 것은 1차 기업구조혁신펀드 위탁운용사에 선정돼 작년 5월 1015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한 큐리어스파트너스·미래에셋벤처투자 컨소시엄에 이어 두 번째다. 큐리어스파트너스는 이랜드리테일, 성동조선해양 투자 등으로 알려진 구조조정 전문 PEF다. 화인자산운용·K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과 같이 구조조정 전문 PEF와 VC가 뭉친 사례다.
이처럼 투자 영역이 다른 운용사 간 협력이 이어지는 이유는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VC들은 초기 창업 기업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PE부문으로 확대해 리스크(위험)를 분산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VC의 범주 내에서 그로쓰(growth)나 세컨더리(secondary)등으로 투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넘어, 기업을 인수한 뒤 가치를 높여 되파는 바이아웃(buy-out)과 같은 PE 영역에 진출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주목적 투자 대상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지만 실무적으로 보다 투자 대상의 자유도가 높은 것도 이들이 시너지를 기대하는 부분이다. 한국성장금융은 올해 2차 펀드를 조성하면서 사전적·사후적 구조조정 기업에 60% 이상을 투자, 중소기업에 약정총액의 35% 이상을 투자한다는 조건은 유지하면서도 1차 펀드에선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던 대기업 투자가 가능하도록 조건을 완화했다.
이 뿐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업 상 피해를 입은 기업도 사전적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포함시켰다. 전체 펀드의 40% 이내인 비(非)주목적 투자에서 자유로운 투자가 가능할 뿐 아니라 60% 수준의 주목적 투자 역시 대상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구조조정 투자와는 다른 관점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KB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운용사 전체의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조조정 기업의 밸류업 등 측면에서도 VC가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PE들은 VC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자신들이 갖지 못한 시각과 딜소싱(투자건 발굴) 창구를 다변화시킬 수 있길 기대한다. 워크아웃, 회생, 대출투자에 치우친 기존의 투자 대상만으로는 만족할 만한 수익률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PE와 VC의 협력을 가속시키고 있다. 큐리어스파트너스 관계자는 "다운사이드 프로텍션(하방안정성)을 중시하는 구조조정 PE와 달리 VC들은 업사이드 포텐셜(상향잠재력)을 중시하기에 같은 기업에 대해서도 보는 관점이 다르다"며 "단독 펀드였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VC와의 협력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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