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진출이 꿈같던 시절, 14세 어린 소녀가 일본 데뷔 1년 만에 열도를 접수했다.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가 우리나라 가수 최초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한 것. 철저한 트레이닝과 춤, 노래 뿐 아니라 일본어까지 겸비한 보아의 탄생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오는 25일, 보아가 데뷔 20년을 맞이한다. 2000년 발표한 1집 '아이디;피스 비'(ID; Peace B)로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신세대들의 대화 방식을 전했던 소녀 가수는 이후 자신의 성장에 맞춰 그.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음악을 선보였다. 19세의 나이에 주체적인 사랑을 전하는 '마이 네임'(My Name)을 발표하고, 성인이 된 후 여성들을 응원하는 '걸스 온 탑'(Girls on Top) 등을 부르며 자연스럽게 그리고 꾸준히 정상의 가수로 인정받았다.
음악적인 부분 뿐 아니라 해외 활동에서도 보아의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당시 세계 2위 시장이었던 일본에서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당시 보아는 하루에 100만 장 이상 음반을 판매하는 저력으로 연예 뉴스 뿐 아니라 경제지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보아의 성공 이후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보아 효과' 등 대중가수의 인기를 경제, 외교적 가치로 조명하기 시작했다"며 "보아 이전에도 훌륭한 가수들이 많았지만, 보아를 기점으로 한류가 태동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보아의 업적을 전했다.
지금은 기획사에서 재능있는 연습생을 선발하고, 이후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하는 게 당연한 코스가 됐다. 하지만 보아가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연습생 트레이닝을 받는 것에 대해 뒷말이 나오던 시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보아를 발탁한 SM엔터테인먼트에는 "비인간적"이라는 말이 나왔고, 보아의 천재성과 노력은 "소속사의 말만 듣는 수동적인 존재"로 폄하됐다. 데뷔도 하기 전부터 선배 가수들의 팬덤의 견제를 받으며 안티 세력의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아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데뷔 무대를 그야말로 '씹어' 먹으며 화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2001년 데뷔 곡 '아이디 피스 비'를 일본어로 발표한 것에 이어 '어메이징 키스'(Amazing Kiss), '리슨 투 마이 하트'를 연이어 일본에 선보이며 단 1년 만에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노래와 춤은 물론 능숙한 일본어로 자유로운 일본 방송 활동이 가능했던 보아는 2003년 일본에서 발표한 두 번째 일본 정규 음반 '발렌티'(Valenti), 2005년 발매한 '베스트 오브 소울'(Best Of Soul)까지 모두 100만 장을 넘겼다. 보아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 동안 앨범과 DVD를 판매한 금액으로만 159억1000만 엔(한화 약 179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수익은 콘서트, MD 판매, 광고 등의 수익을 제외했다는 점에서 보아는 실제로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었던 셈이다. 2007년엔 보아의 경제적 가치를 두고 20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활약도 이어졌다. 보아는 2002년 서울가요대상, SBS 가요대전에서 '최연소' 대상을 차지했다. 대상 트로피를 거머쥘 당시 보아의 나이는 겨우 16세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정상에 오른 보아의 다음 타깃은 미국이었다. 2008년 첫 싱글 '잇 유 업'(Eat You Up)을 발표해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8위에 올랐고, 2009년 발표한 두 번째 싱글 '아이 디드 잇 폴 러브'(I Did It for Love), '에너제틱'(Energetic) 등도 모두 빌보드 핫 댄스 클럽송에 올렸다. 지금이야 방탄소년단, NCT127, 블랙핑크 등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오르는 빌보드이지만, 보아의 활동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SBS 'K-팝스타' 시리즈, Mnet '프로듀스101' 시즌2, '보이스코리아 2020' 등에서 따뜻한 조언을 보여주면서 성장형 아이돌의 모범이 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14년 H.O.T 출신 강타와 함께 보아를 비등기 이사로 했다. 당시 SM 측은 "두 사람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다양한 콘텐츠 및 신규사업 기획 등에도 참여해 글로벌 활동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역량을 새롭게 발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엔 SM 외에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에도 소속 가수 권익을 위해 오랫동안 기여했던 아티스트를 이사직에 올리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소속사에서 이사직에 소속 연예인을 올린 것은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엔터 상장사 관계자는 "보아는 존재 자체가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될 가수"라며 "보아 같은 가수가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알려주고,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SM 측에서는 경제적 가치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존재일 것"이라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