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해진 전철을 타고 뉴욕 헤럴드스퀘어역에서 빠져나오자 귀에 익은 한국 가요가 들려왔다. 코리아타운(K타운)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맨해튼 내 다른 거리와 달리 오가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한국 음식점이 밀집한 32번가에 들어서자 뉴욕시가 설치한 ‘코리아타운, 오픈 스트리트(open street)’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한인 식당들이 차로를 막고 자유롭게 야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시와 경찰이 배려한 것이다. 이곳부터 약 200m 거리는 숯불갈비 냉면 비빔밥 등 한국 전통 음식을 파는 거대 포장마차촌으로 변신해 있었다. 오후 8시가 지나자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0~30분 기다려야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곳도 많았다.
뉴욕시는 여전히 모든 식당의 실내 영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소상공인 피해를 줄이려고 실내 영업 허용(3단계 경제 정상화)을 추진했다가 코로나19가 재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철회했다. 하지만 한인들이 대거 ‘야외 맛집’을 차리자 뉴욕시도 응원하고 나섰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다. 시는 지난달 31일 맨해튼 코리아타운을 오픈 스트리트로 지정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11시, 토·일요일엔 낮 12시~오후 11시에 ‘차 없는 거리’로 바뀐다. 10월까지 이어지는 한시 조치지만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오픈 스트리트가 시민들에게 안전한 식사 장소를 제공하고, 식당에는 재기할 발판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뉴욕한인회도 힘을 보탰다. 찰스 윤 한인회장은 “시의원들을 만나 한인타운 매출이 종전 대비 평균 20%로 떨어졌다는 점을 하소연한 게 통한 것 같다”며 “지금은 평일 코리아타운에 버스들이 주차하지 못하도록 노선을 변경하는 게 현안”이라고 설명했다.
코리아타운이 오픈 스트리트로 지정된 뒤 주말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뉴욕 명물’로 떠올랐다는 게 시민들의 평가다. 뉴욕 내 오픈 스트리트가 62곳에 달하지만 이곳처럼 수십 개 식당이 촘촘히 모여 있는 곳은 드물다. 한국 음악을 좋아한다는 에이미 쿠블라차 씨는 “K타운에 오랜만에 왔는데 이렇게 붐빌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주말 저녁 시간대 손님의 60~70%는 아시아계였으나 나머지는 백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이었다. 20~30대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DJ를 고용해 수시로 음악을 바꿔주는 식당도 두 곳 있었다. 한인 식당 ‘우동 랩’ 직원은 “저녁 8시가 넘어가면 야외 식당들이 술과 안주를 취급하는 주점으로 바뀐다”며 “우리도 천막 위에 조명과 음향 장치를 새로 설치했다”고 귀띔했다.
삼원가든만 해도 1~3층 규모에 별도 방과 100개 가까운 좌석이 있지만 현재 영업이 가능한 야외 테이블은 10개뿐이다. 또 다른 식당 관계자는 “수년간 맨해튼 임대료가 급등했는데 코로나 사태에도 요지부동”이라며 “그나마 이달부터는 손님이 늘어 월세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코리아타운 내 한국식 P베이커리는 5개월치 임차료(21만7000달러)를 내지 못해 소송까지 당한 상태다.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턱에 걸친 채 한인 식당을 돌아다니는 손님이 적지 않은 점도 걱정스러웠다. 이곳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할 경우 코리아타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미국 내 ‘코로나 진원지’로 꼽히던 뉴욕주 감염자가 하루 1000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누적 사망자 수는 약 3만3000명으로, 50개 주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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