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제약·바이오산업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항체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업으로 키워가겠습니다.”
정병헌 세라노틱스 대표(57)의 포부다. 2017년 10월 설립된 세라노틱스는 지난해 새로운 회사로 거듭났다. 바이오 화장품을 만들던 파머슈티컬 기업으로 출발했다가 항체 신약 개발 회사로 방향을 바꿨다. 사실상 제2 창업이다. 삼성종합기술원 등에서 오랫동안 항체 연구를 해온 이정욱 연구소장(전무)이 합류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불과 1년여 만에 항체 신약 개발의 디딤돌이 될 라이브러리도 구축했다. 라이브러리는 다양한 기전을 가진 항체를 모아둔 일종의 항체 은행이다. 정 대표는 “기존 면역항암제와는 다른 콘셉트의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정 대표는 서울아산병원 1호 스핀오프 기업인 웰마커바이오 설립에도 참여했다. 2016년 12월 웰마커바이오를 세우고 1년가량 각자대표를 맡아 회사를 이끌었다. 그러다 웰마커바이오 자회사로 세라노틱스를 세웠다. 화장품 등 바이오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식물줄기세포를 이용해 피부 노화를 막아주는 기능성 화장품 ‘메디코이’를 출시했다.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대형병원에서 판매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연간 매출은 2억원을 웃돈다. “병원 근무 시절 화장품 원료를 개발하는 회사의 제안으로 병원이 사업 참여를 검토했었어요. 매력적인 사업이라는 결론이 났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던 게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현금창출원(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는 효자사업이 됐죠.”
정 대표는 면역항암제 개발을 목표로 잡았다. 연구진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삼고초려 끝에 지난해 4월 이 연구소장을 영입했다. 성균관대 유전공학과를 나온 이 연구소장은 삼성종합기술원, 삼성바이오에피스, 한올바이오파마 등에서 이중항체, 면역항암제 등을 연구해온 항체 전문가다. 이 연구소장은 “근무하던 회사의 개발 방향성이 제 생각과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며 “그동안 꿈꾸던 R&D 뜻을 펼치고 싶어 합류를 결심했다”고 했다.
첫째는 인간 항체 라이브러리다. 인간 유래 아미노산 유전정보를 기반으로 20억 개의 항체 정보를 확보했다. 둘째는 10억 개의 나노바디 항체 라이브러리다. 상어 낙타 등에 있는 나노바디 항체 정보를 모았다. 나노바디 항체는 가닥이 둘로 나눠진 인간 항체와 달리 가닥이 하나뿐이어서 서로 얽히거나 달라붙지 않아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항체 중 하나다.
셋째는 면역 라이브러리다. 동물에 항원(병원체)을 주사해서 만든다. 이 면역 라이브러리 기술은 기존 기술과 차별화된다. 대개는 면역세포와 암세포를 붙인 융합세포인 하이브리드마를 먼저 만든 뒤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켜 항체를 만든다. 이를 통해 특정 암세포에 어떤 면역세포가 잘 작용하는지를 알려주는 데이터를 쌓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효율이 떨어진다. 반응률이 70~80% 수준에 그친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단점이다. 세라노틱스는 다른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면역세포의 리보핵산(RNA) 정보로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역발상을 했다. 동물 면역세포에서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메신저 RNA(mRNA)를 분리한 뒤 DNA 합성을 거쳐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이 연구소장은 “최적의 항체를 찾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기존 기술 대비 항체를 3~5배 많이 확보하는 효율성까지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고 했다.
최적의 항체를 찾는 분석 기법도 확보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서다. 합성약은 타깃의 화학구조를 파악하면 금방 어떤 약물이 잘 맞는지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단백질은 이 같은 모델링 방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고분자 화합물인 단백질은 구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항체와 항원의 특성을 잘 분석한 뒤 특정 항원에 잘 반응하는 항체를 찾는 게 기업의 경쟁력으로 꼽히는 이유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의 연구 정보를 축적한 뒤 이를 컴퓨터로 분석하고 항체를 모델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다양한 라이브러리를 확보한 만큼 최적의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항암제 개발 기업 등에 최적의 항체를 찾아주는 항체 개발사업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력 파이프라인인 ‘TN-IO-01’은 소세포성 폐암 치료제로 개발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후보물질 발굴 작업을 마치고 최종 선정작업을 하고 있다”며 “올해 말 전임상(동물실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소세포성 폐암은 비소세포성 폐암에 비해 환자 수는 적지만 치료 확률이 10%가 안 되는 난치성 질환이다. 그는 “내년 하반기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을 국내에서 시작하고 곧바로 미국에서도 임상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키트루다 등 기존 면역항암제와 병용 임상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기존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운 암환자를 낫게 하는 신약도 개발한다. 내성암 후보물질은 아직 탐색 단계다. 정 대표는 “현재 폐암 위암 대장암 등을 적응증으로 하는 신약으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소세포성 폐암 후보물질과 동시에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파이프라인 ‘TN-IO-02’는 비소세포성 폐암 치료제다. 내년 임상 1상 진입이 목표다. 회사 측은 병용 치료제로서의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 전이암을 동반 진단하는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를 확보해 전이암 특이적 항체를 개발해서다. 정 대표는 “기존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20% 정도밖에 효능을 내지 못해 병용 치료제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병용기술로 주목받아온 인터루킨 기반 후보물질이 독성 등 부작용을 갖고 있어 TN-IO-02가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했다.
세라노틱스는 항체 기반 신약회사들과 협업을 늘려나가며 성장하는 전략을 세웠다. 독일 모포시스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1992년 설립된 라이브러리 전문기업 모포시스는 기업가치가 40억유로(약 5조6000억원) 수준이다. 74개 파이프라인을 바이엘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와 협업하며 개발하고 있다. 라이브러리 기술 덕분이다. 정 대표는 “해외 전시회, 학회 등에 본격적으로 참가하며 후보물질을 알릴 예정”이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 임상을 동시에 진행해 치료제 개발 속도를 높여나가겠다”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