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선진국들이 짊어지고 있는 부채가 2차 세계대전 직후보다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을 펼치면서 재정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인용,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선진국들의 국가부채 비율이 지난달 기준 128.2%가 됐다고 보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세운 기록(124.1%)을 갈아치웠다. IMF는 내년에도 이 비율이 128.4%일 것으로 예상했다. IMF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39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한 현실이 드러났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명예학장은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고 지출 규모는 별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코로나19 경기부양책 때문에 미국은 올해 회계연도(지난해 10월~올 9월) 연방적자를 2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많은 3조7000억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와의 전쟁 뒤 국가부채가 줄어드는 속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비해 턱없이 느릴 전망이다. 종전 10여년 뒤인 1950년대 후반 선진국들의 부채비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미국 경제가 연 4%, 독일과 일본이 8% 성장하는 등 전후 경제성장 덕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주요 선진국들의 연평균 GDP 증가율은 1~2% 남짓이다. 베이비붐으로 젊은 인구가 늘었던 2차 세계대전 후와 달리 최근 선진국에서는 저출산으로 노동력이 감소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바로 군비를 축소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지금은 경기부양책을 언제 중단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종전 후에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국가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에도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지 않았다.
막대한 국가부채를 ‘뉴노멀’로 받아들이며 별 탈 없을 선진국도 있다는 전망이다. 초저금리 시대라 이자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중앙은행(Fed)은 발행한 국채의 15%, 일본은행(BOJ)은 36% 가량을 사들여 국가부채 부담을 줄여놓았다. GDP 대비 200%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는 일본도 현재까지는 재정위기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한편 전세계 GDP 대비 신흥국들의 국가부채비율은 최근 62.8%로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1946년 46.9%였던 이 수치는 1989년 56.1%를 찍었다가 이후 하락했지만, 올 들어 역시 코로나19 관련 경기부양책의 여파로 다시 상승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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