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논란, 누구도 못 믿겠다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8-27 09:00   수정 2020-08-27 09:08


2012년 9월이었다. 연세대 의료·복지연구소 보고서가 뉴스를 탔다. 보건복지부가 용역을 의뢰한 ‘적정 의사인력 및 전문분야별 전공의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는 2020년에 가면 국내 의사가 3만 4000명~16만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의사의 연간 진료가능일수와 의료이용량 증가율 가정에 따른 작업부하량(work load) 분석에서도, ‘의사 노동시장’ 관점에서 본 의료(의사) 수요 분석에서도 의사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국제적 비교를 통한 분석에서도 한국은 의사 부족상태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정한 적정 임상의사 수는 2011년 인구 1000당 2.5명이었지만 한국은 한의사까지 포함해도 2.0명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의대 정원 확대를 제시했다. 3058명이던 의대 정원을 3300명 이상 수준으로 늘리고, 2단계로 편입학 과잉규제 등을 개선해 360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야 향후 10여년 동안 예상되는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그 때도 한국의 의사 수가 공급 과잉 상태라고 반박했다. 2020년 경에는 아예 ‘초(超)과잉’이 우려된다며 의대 정원을 오히려 축소해야 한다고도 했다.

2020년 지금, 누구의 말이 맞았는지 따지자는 게 아니다. 복지부는 8년 전 이런 용역 결과가 나왔음에도 의협의 반발을 의식해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면 2012년 의사 부족 전망은 왜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2010년 의약분업 갈등을 타결하는 조건 중의 하나가 ‘의대 정원 10% 감축’이었다. 41개 의대 3253명이던 의대 정원이 지금의 3058명으로 줄어들었다.

당시 느닷없는 의대 정원 감축을 두고 의약분업의 대가로 의협을 달래기 위해 나온 당근책이었다는 해석이 많았다. 2001년 복지부는 의사 과잉 배출을 우려한 때문이라며 의대 정원 감축을 정당화했다. 당시 복지부의 논리는 의협이 지금 주장하는 것과 거의 맥락이 같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의대 정원 감축은 사실상 복지부와 의협의 담합이나 다름없었다.

2020년이 된 지금 복지부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의협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의협은 의협대로 각자 유리한 근거들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2001년에는 의사 과잉 배출이 우려된다고 했다가 2020년 의사 부족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복지부는 이미 신뢰를 잃은 부처가 되고 말았다.

2020년에 가면 의사 초과잉이 우려된다던 의협도 다를 게 없다. 의협이 전망한 대로 지금이 의사 초과잉 상태인가? 초과잉을 전망하면서 그동안 죽자사자 의대를 간 이유는 무엇인가? 2020년이 되자 의협도 말을 바꿨다. 고령화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채 이번에는 저출산으로 인해 의사가 앞으로 남아돌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저출산을 ‘불변의 가정’으로 끌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아돌지 않을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신뢰를 상실하기는 정치세력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의약분업 타결에 따른 의대 정원 감축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졌다. 두 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라면 당시의 정책적 과오에 대해 해명부터 해야 맞지 않는가?

의협이 4대 악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는 원격의료를 이름만 바꿔 비대면진료를 육성하겠다는 것도 그렇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의사파업을 몰고온 원격의료에 대해 의협과 함께 말도 안되는 논리로 반대한 것은 당시 야당이던 지금의 여당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똑 같은 사안을 놓고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 말이 완전히 다른 정치는 불신만 더욱 깊게 할 뿐이다.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공범이다. 자신들이 여당일 때 추진했던 원격의료에 대항해 파업을 했던 의협이 4대 악의 하나로 규정해 또 다시 파업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데도 내 일이 아니라고 침묵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2015년 공공보건의료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국립의대 신설법을 발의한 것도 당시 여당이던 그들이었다. 그런데도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논란이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정치가 이 수준이면 누가 집권하든 달라질 게 없다.

이번에도 틀린 것 같다. 의협은 2차 총파업에 돌입했고, 정부는 업무개시명령과 함께 원칙적인 법집행 선언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의협이 파업에 돌입하기 전 복지부가 털어놓은 잠정 합의문이 이미 알려주고 있다. 1)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중단하고, 2)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양자 간)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하며, 3) 협의 기간에는 정부가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안정화는 언제 이루어질까? 6개월 후? 1년 후? 2년 후? 3년 후? 어느 시점에서 복지부와 의협이 코로나19 안정화에 의견 일치를 보더라도 그 때부터 시작되는 협의는 또 언제까지 이어질까? 문재인 정부에서 의대 정원 확대는 이미 물건너갔다는데 한 표를 던지겠다. 역사는 이날의 ‘합의’를 국민은 쏙 빼놓고 복지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를 무산시킨 그들만의 ‘담합’으로 기록할 것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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