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하지만 미국서 항체진단키트 정식 판매 허가를 받은 국내 업체는 아직 없다. 수백억원의 분기 매출을 올리는 항체진단키트 업체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미국 시장만 유독 문턱이 높다. 분자진단키트에선 국산 제품 14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것과 대조된다.
항원진단키트도 코나 목 속에서 채취한 검체를 이용한다. 키트에 검체를 떨어뜨리면 바이러스 항원이 키트에 탑재된 항체와 결합하면서 감염 여부가 표시된다. 임신진단키트와 비슷한 원리다. 이 방식은 별도 실험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데다가 10~15분이면 검사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정확도가 40~80%에 그치는 게 단점이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바이러스 항원에 잘 결합하는 항체를 만들어야 하지만 항체 개발에만 1~2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코로나19 항원진단키트로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제품은 4개에 불과하다.
또 다른 방식이 항체진단키트다. 앞선 두 방식과 달리 혈액에서 분리한 혈청을 검체로 쓴다. 우리 몸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이를 막기 위해 이뮤노글로블린M(IgM)과 이뮤노글로블린G(IgG)라는 항체를 형성한다. IgM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가장 먼저 생기는 항체다. 세포 표면에 달라붙어 세포의 신호 전달을 활성화한다. 이 항체가 형성됐다면 최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걸 의미한다. IgG는 바이러스와 결합해 면역세포를 바이러스로 유도하는 항체다. 체내 항체 중 70~75%을 차지한다. 혈액을 분석해 이 두 항체의 형성 여부를 확인하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검사 시간이 15분가량에 불과하고 별도 실험 장비가 없어도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항체가 형성되는 데는 감염 이후 3~10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초기 감염자를 잡아내는 데는 쓰기 어렵다. 정확도는 70~90% 수준이다.
항체진단키트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은 개발도상국 위주로 항체진단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검사 정확도가 높은 RT-PCR 진단 방식을 활용할 수 있지만 의료 여건이 열악해 실험 장비가 부족한 국가에선 RT-PCR 진단키트를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면역 여부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이기보다는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용도로 항체진단키트가 활용되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산 항체를 사용한 제품 위주로 불량 문제가 불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감염자를 잡아내지 못하는 위음성 사례가 속출하자 지난 5월 FDA는 긴급사용승인(EUA)을 받아야만 항체진단키트 사용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변경했다. 한국 기업도 덩달아 역풍을 맞았다. FDA는 제품 등록이 돼 있는 업체들에게 5월 20일까지 EUA를 신청할 것을 권고했다. 국내 업체 중 최소 8곳이 EUA를 신청했다. 이후 미국에서 EUA를 획득한 코로나19 항체진단키트 제품은 세계적으로 40개가 나왔다. 국내서는 코스닥 상장사인 엑세스바이오가 유일하다. 엑세스바이오는 미국 뉴저지주에 본사를 둔 한상(韓商) 기업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제품을 만드는 데 국내서는 자회사인 웰스바이오가 생산을 맡고 있다.
국내 항체진단키트 업체에서 EUA 승인이 아직 나오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업체가 EUA를 신청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열흘새 FDA에 EUA를 신청한 업체는 세계적으로 200여곳에 달한다. 신청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진단키트 성능 평가를 위해 미국 보건당국이 준비해뒀던 검체 패널도 부족해져 새 검체 패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통상 한두 달이 걸리던 EUA 검토 기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FDA에 EUA를 신청했던 바디텍메드는 다섯 달이 지나도록 평가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제품에 이상이 있거나 제출 서류가 미비한 것도 아닌데 일정과 관련한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휴마시스도 지난 5월 신청한 EUA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EUA가 잘 나오지 않는 데는 유독 항체진단키트에서만 평가 절차가 까다로워진 탓도 있다. RT-PCR 방식 진단키트는 현지 의료기관에서 임상을 진행하지 않더라도 EUA 획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FDA는 미국 국립암센터(NCI)나 국립보건원(NIH) 등 현지 의료기관을 통해 평가를 진행한 제품에 대해서만 EUA를 내주고 있다. 수젠텍은 평가 중 NCI에서 발생한 착오로 인해 7월 말 EUA를 재신청했다. NCI의 평가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RT-PCR 방식 진단키트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였다. 이 업체는 NCI에서 진행한 성능 재평가에서 민감도 100%, 특이도 99%를 기록했다.
피씨엘도 NCI 평가를 통과하고 FDA와 논의를 통해 제출 자료 보완 작업을 진행 중이다. 디엔에이링크는 NCI에 진단키트 시료를 제출하고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민감도 95%, 특이도 100%의 평가 결과를 얻었던 만큼 EUA 획득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대부분의 항체진단키트 업체들에게 미국이 매력적인 시장은 아니다. 국내 업체들의 주력 시장이 된 개발도상국과 미국에서 항체진단키트를 사용하려는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항체진단키트는 중남미, 아시아에선 RT-PCR 방식의 대안으로 주로 쓰인다. RT-PCR 방식의 검사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국가에서 감염자를 찾아내려는 용도로 항체진단키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RT-PCR 방식으로 잡아내지 못한 감염자를 찾아내거나 감염 이력, 면역 여부를 확인하는 데 항체진단키트를 활용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항체진단을 초기 진단용으로 쓰려는 국가에선 가장 빨리 형성되는 항체인 IgM을 잡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면역 여부를 확인하려는 국가에선 IgG를 주로 본다”며 “항체진단키트 수요가 진단용으로 쓰는 국가에서 더 많은데 굳이 IgG의 민감도와 특이도를 높이면서까지 미국 시장에 집중할 만한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항원진단키트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셀트리온, 바디텍메드, 피씨엘 등이 대표적이다. EUA를 받은 항원진단키트가 4개 제품에 불과한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 얻을 수 있는 위상 제고와 시장 선점 효과도 더 크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비비비, 휴마시스와 공동 개발해 항원진단키트 개발을 마쳤다. 바디텍메드는 미국 현지에서 항원진단키트 임상을 진행 중이다. 바디텍메드 관계자는 “이달 말 임상이 끝나는 대로 EUA 준비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피씨엘도 FDA에 허가를 신청하고 EUA를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18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항원진단키트가 해외 거래처에서 가장 많이 찾고 있는 주력 제품"이라며 "카타르 보건당국인 HNC가 최근 공식제품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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