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경영이 어려워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상환을 미뤄주는 조치가 6개월 연장된다. 중소기업계는 환영했지만 금융권은 우려를 쏟아냈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이 정책이 끝나면 감춰진 부실이 무더기로 드러나 자산건전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장기화를 반영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의 원금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6개월 연장하기로 했다고 27일 발표했다. 9월 말 끝낼 계획이었지만 내년 3월 말까지 신청을 더 받기로 했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내년 3월 31일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에 대해 최소 6개월 이상 만기 연장과 이자 납부 유예를 신청할 수 있다. 금융위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고 금융권의 부담이 크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정부는 모든 금융회사에 4월 1일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에 대해 6개월 동안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도록 했다. 이달 14일까지 만기를 연장해 준 대출은 75조7749억원, 납부가 유예된 이자금액은 1075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미 한 차례 신청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도 유예기간이 내년 3월 31일 이전에 끝난다면 또 한 번 신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월 돌아온 대출 만기를 오는 11월로 미뤄둔 사업자는 한 번 더 연장을 신청해서 만기를 내년 5월로 늦출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가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면서 원금 상환을 최대 1년 늦춰주는 것은 수긍하겠지만 이자까지 못 받게 하는 건 납득이 안 된다”며 “이자를 못 받으면 차주의 부실을 확인할 길이 없어 자산건전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조건 없이…6개월 대출만기 연장·이자상환 유예
금융권에서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빚 상환을 미뤄준 데 따른 ‘착시효과’라고 설명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출 상환 유예로 은행들의 건전성·수익성 지표는 내년 초까진 좋아 보일 것”이라면서도 “그 이후가 문제”라고 털어놨다.
금융회사들은 감면조치가 끝나는 시점에 부실 대출이 무더기로 드러나며 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줄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내놓는다. 두 차례 연장한 차주(借主)라면 최소 1년 이상 부실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어서다.
여신 담당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정상기업과 부실기업을 구분해 모니터링하는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건전성을 관리할 때 이자 납입을 유예받을 경우에는 ‘한계기업’으로 분류한다”며 “이런 기업을 정상이라고 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하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위원회 제안으로 열린 코로나19 대책 관련 회의에서 몇몇 금융사가 “이자 유예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자마저 받을 수 없다면 대출이 얼마나 부실화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7~8월 ‘릴레이 간담회’를 통해 금융지주 회장, 정책금융기관장, 금융협회장 등을 설득하면서 금융권은 결국 당국 방침에 따르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신용카드사와 캐피털업계를 비롯한 2금융권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카드사 관계자는 “은행들은 담보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카드사는 거의 모든 대출이 신용대출”이라며 “1년간 ‘깜깜이 대출’을 해줬다가 파괴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은행이 무작정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주면 카드사에 돈을 빌릴 때 상환능력이 안 되는데도 정상 차주로 분류돼 추가 대출을 해주게 된다”며 “이런 일이 조금만 생겨도 곧바로 자산건전성이 악화된다”고 말했다.
만기 연장과 이자 납부 유예는 코로나19 피해를 본 중소기업·소상공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원리금 연체, 자본잠식, 폐업 등의 부실이 없어야 한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올해 3월 31일 이전에 빌렸고, 2021년 3월 31일 이전에 상환기한이 도래하는 중소기업·개인사업자대출이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이나 부동산매매·임대 등 일부 업종 관련 대출은 제외된다. 상환을 미룬 대출 원리금은 유예기간이 종료된 이후 일시 또는 분할상환할 수 있다.
임현우/김대훈/박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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